김수복 교수 : 시는 ‘느끼는’ 것… 시대상과 자아성찰을 한껏 녹여내다
김수복 교수 : 시는 ‘느끼는’ 것… 시대상과 자아성찰을 한껏 녹여내다
  • 김아람 기자
  • 승인 2016.05.31 20:33
  • 호수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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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문예창작) 교수 - 창학이념 자립(自立)

프롤로그
“시인이라면 침범, 억압, 파괴 등에서 자유로운 진실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대학 김수복(문예창작) 교수. 그에게서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선다는 ‘자립’이 엿보이는 이유다. 그는 요즘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산책하며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사진과 함께 SNS에 게시한다. 언제든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할 수 있는 문학적 DNA를 유지하고 가꿔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함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줄 부끄러움 없는 시를 쓰는 것이 목표라는 등단 41년 차 시인 김 교수는 오늘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고,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호흡한다.
그가 풀어놓은 문학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중학교 2학년 때 도서관에서 오영수 작가의 「메아리」라는 작품을 읽었다. 작중배경이 지리산 필봉산자락인데, 어릴 때 땔감을 구하러 종종 드나들던 곳이다. 내 고향이 문학 작품 속 배경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때 처음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이어 고등학생 땐 학교 문예반 반장, 대구 연합 문학동아리 ‘회귀선’의 회장을 맡았다. 모교인 대륜고등학교가 이상화, 이육사 등 훌륭한 문인을 많이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그 혈통을 물려받지 않았나 싶다.

▶시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바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문학적으로는 ‘존재의 전환’이라고 하고, 요즘엔 ‘시 치료’, ‘시 치유’ 등의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공자는 “시 삼백 편을 알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詩三百 思無邪)”고 했다. 사람의 아주 복잡한 심경이나 감정 상태를 시가 주는 느낌을 통해 전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풍부한 마음의 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척박한 곳에 씨를 뿌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햇볕이 지나치게 강렬하거나 돌이 많아서도 안 되며, 감정의 씨앗이 싹틀만한 마음의 땅이 비옥해야 한다. 여기에서 땅은 자신이 사는 환경, 시대에 대한 감정, 삶의 경험, 자연적 경험이 쌓여 형성된다.
더불어 시는 자기표현이자 자기성찰이다.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시대를 반영할 수 없다. 스스로를 깊이 탐구한다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도 좋은 시의 요인이라 여기는 것 같다.
물론이다. 시대 현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서정적 인식도 중요한데, 이를 갖춰야만 시가 생명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방법으로 ‘자연’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자연은 우리 역사의 상흔(傷痕)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자연의 영속성을 통해 시대의 삶과 정신을 조명하는 동시에 현실에선 치유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룰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활용하려면 이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할 텐데.
전국의 길이란 길은 다 가본 것 같다. 지도를 가지고 다니면서 갔던 길에 표시를 해뒀다. 특히 대학생 때 동학운동의 루트를 추적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곳저곳을 답사하며 문학작품의 주요장소들이 훼손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 장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영상화해 창작의 원천으로 활용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시작한 연구는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 육성과제 선정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제자들이 나를 ‘인간 내비게이션’이라고 부른다. 나의 발걸음이 문학의 출발이자, 과정이자, 결과다.

▶올해로 등단 41주년이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등단한 것인가.
그렇다. 1학년 겨울방학에 투고하고, 2학년 3월에 당선돼 등단했다. 행정학과 학생이었는데 등단을 계기로 국문학과로 전과했다. 당시 부총장이었던 故 김석하 교수의 추천으로 4년 동안 특별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한국문학에 등단한 것이 내 청춘을 구원한 일이나 다름없다.

▶행정학과로 입학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고향이 굉장히 낙후된 곳이었다. 그래서 군수를 하며 고향을 번영시키겠다는 것이 당시 꿈이었다. 하지만 서울생활은 그리 녹록지 않았고, 그 때문에 접어뒀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1학년 겨울방학, 고향에 내려와 행정고시 공부를 하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시들을 적어 투고했다. 당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태’이다. 이는 스스로 죽는 방법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발견을 위한 노력이 사라지는 순간, 두려움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현재만 보면 안 된다. 자신을 끊임없이 미래로 옮겨놓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생각, 사상, 정신 등을 10~20년 앞에 내놓자. 비전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면 시인으로서의 생명도 끝이다.

▶최근 인공지능이 급부상하고 있다. 시의 영역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관여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에는 언어의 리듬, 그리고 운율적인 힘이 있다. 리듬과 운율에는 흥겨움이 있는데 그걸 기계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가능하다 할지라도 시인들은 그러한 형태를 깨며 또 다른 시의 형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시는 ‘반 형식’의 역사고,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문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인문학을 등한시 여기는 세태가 만연하다.
이는 기성세대의 범죄라고 본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고려하지 않고 물질적 가치만 중요시해 이 같은 통탄할 일이 벌어졌다.
모든 학문은 ‘인간학’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그 어떤 물질문명도 번영할 수 없다. 앞으로는 물질화된 것을 인간화하는 전문 인재가 필요할 것이다. 이때 인문학도들이 힘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 ‘문행합니다(문과라서 행복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장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요즘 학생들은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요즘 학생들은 이해가 안 되면 쉽게 포기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다.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시도 많다. 일단 느껴라.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갈구하지 않듯 시도 마찬가지다.
힘들고 지칠 때 노래를 찾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론 힘들 때 김소월의 「개여울」이라는 시를 흥얼거린다. 학생들 역시 희로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시를 찾길 바란다.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기억에 남는 스승과 제자가 있을까. 그리고 어떤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우리 대학 문예창작과의 모든 학생이 나의 제자이자 스승이다. 학생들이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것만큼 스승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것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제자들 모두가 자랑스럽다.
또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 때 생각나는 스승이 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기쁠 때는 생각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미래에 살자! 항상 자기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흔히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미래가 있어야 오늘의 내가 있다.
또한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하다. 무작정 빨리 달리기보단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란다.
더불어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저앉지 않고 정진하다 보면 어느새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다.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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