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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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9.06 14:03
  • 호수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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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시선 7 :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 선 연예인과 사생팬
▲ 일러스트 이용호 기자

● [View 1] 사생팬
나도 처음에는 평범한 팬이었다. 공식 팬클럽에서만 활동한 것은 물론이요, 재미 삼아 팬픽을 써본 적도 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던 지난겨울, 함께 팬 활동을 하던 친구가 기획사 앞에서 온종일 기다리면 멤버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추위까지 버텨가며 기다린 지 반나절, TV에서만 보던 오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밤, 날 보며 웃어주던 그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날 이후 수업이 끝나면 기획사나 숙소로 달려가 새벽까지 오빠들을 기다리는 게 일과가 됐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오빠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분. 그마저도 허탕 치는 날이 대부분이다. 팬들끼리 모여있다 보니 멤버들의 단골집은 물론 개인정보까지 자연스레 공유하게 됐다. 오늘은 뭘 먹었고, 누구와 만나고 연락했는지 빠짐없이 알지 못하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제 학교에 있을 시간에 오빠들 얼굴을 한 번 더 보러 다니고, 학원비나 용돈은 모두 사생 택시를 타는 데 쓴다. 멤버들이 탄 차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택시로 바짝 붙어 오빠들의 말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빠들을 볼 때면 다른 팬보다 돋보이고픈 마음에 반말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고, 차에서 내려 나를 봐줄까 싶어 오빠 차에 접촉사고를 낸 적도 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뿐인데, 언론에서는 이런 나를 범죄자 취급한다. 하지만 앨범이 많이 팔리는 것도, 음악방송 1위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덕분이다. 그러니까,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처럼 영원히 오빠들을 사랑할게.

● [View 2] 연예인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라지만 요즘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던 무명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연습실, 숙소 앞까지 모자라 개인적인 술자리와 부모님이 계신 집까지 찾아오는 팬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할 때마다 따라붙는 사생 택시들을 따돌리기 위해 제한속도를 훌쩍 넘기게 되는 위험한 상황도, 공중화장실까지 따라오는 팬들을 막기 위해 멤버들이 번갈아가며 입구를 지켜야 하는 것도 이젠 익숙하다.

선물 받은 인형엔 몰래카메라가 달려있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대기실은 엉망진창이 돼있다. 쉴 틈 없이 괴롭히는 사생팬 때문에 다른 팬들까지 경계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밤낮없이 울려대는 초인종과 전화에 가족과 지인들이 힘들어하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속상하기만하다. 모르는 번호로 수백 통 씩 날아오는 전화와 메시지 때문에 번호를 바꾸는 날엔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가 온다. ‘오빠, 또 번호 바꿨네.’ 

SNS에 경고를 남긴 것도 여러 번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일상은 사생팬들의 SNS에 생중계되고, 나의 손이 탄 물건들은 중고장터에서 거래될 것이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소름 돋는 기분, 이제는 그만 느낄 때도 되지 않았나.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연예인의 사생활
일부 팬들의 어긋난 팬심에 스타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아이돌 그룹의 팬덤 문화에서 비롯된 사생팬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알기 위해 열성적으로 그들을 쫓아다니는 팬을 말한다. 사생팬들은 연예인의 연습실, 자택, 비행기 등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개인정보를 수집, 유출하는 등 팬이라는 이름 아래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발생시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과거 사생팬은 10대가 대다수였지만 요즘에는 경제력이 있는 20, 30대와 중국, 일본 등의 해외 팬들까지 합세했다. 이들이 이용하는 사생 택시는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연예인 차량을 뒤쫓고, 물가를 모르는 외국인 팬들에게 지나치게 높은 금액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예인에 대한 강한 집착과 다른 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 사생팬끼리의 유대감이 사생 활동을 지속하게 되는 이유라고 밝혔다. 

피해를 본 연예인들의 지속적인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생팬을 적극적으로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생팬의 죄는 주로 주거 침입, 성추행, 개인정보침해 등에 해당되지만 고소했을 경우 다른 사생팬이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등의 보복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제해달라는 연예인의 당부마저 무시하며 정신적·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생팬. 그들을 사생팬이 아닌 ‘사생범’이라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설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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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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