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인권 이야기 2.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리
우리가 몰랐던 인권 이야기 2.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권리
  • 단대신문
  • 승인 2016.09.19 13:21
  • 호수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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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well-dying)도 인권
▲ 출처: www.abjournal.ca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권리’에 대해 아시나요? 제가 있는 네덜란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법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인공호흡기 제거 등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안락사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2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안(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됐습니다. 정부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세부법령 마련을 위해 2018년 2월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이 법안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문제는 아직도 일부, 특히 의료인들조차 이 연명치료 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법안 통과의 배경에는 2009년 대법원의 ‘김 할머니 사건’ 판결이 있습니다. 김 할머니는 폐암 검사 도중 의식을 잃고 뇌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며 인공호흡기 부착 중단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1심, 2심 소송 끝에 결국 대법원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허용했고, 이는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택할 권리를 인정받은 판례입니다.

김 할머니는 호흡기 제거 7개월 후인 2010년 1월 사망했습니다. 당시 신문사 기자였던 필자는 취재를 위해 김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손녀에게 어렵사리 말을 걸었는데, 당시 그 아이는 유품이 된 할머니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전화기에는 할머니가 검사를 받기 전 가족들과 함께 병원에서 찍은 영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통해 저는 그 가족들이 왜 할머니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는지 기사로 썼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때는 가족들의 진심을 가슴 깊이 공감하진 못했습니다. 이들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4년 후인 2015년 서울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였습니다. 그곳에는 필자의 친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누워 계셨습니다. 할머니의 몸에는 각종 장치들이 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인공호흡기가 부착돼 있었습니다.

그때 중환자실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됐습니다. 중환자실 환자 가족들은 항상 휴대폰을 손에 들고 다닙니다. 언제든 병원 전화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긴장합니다. 환자의 임종을 알리는 전화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제 할머니의 경우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고 손상된 장기들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환자가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환자의 몸에 가득한 주삿바늘 자국과 멍, 욕창 그리고 시커멓게 변해가는 손과 발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김 할머니의 판결문이 생각났고 병원 측에 대법원 판례를 설명하며 할머니의 치료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처음 답변은 ‘그것은 판례일 뿐’이였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사정 끝에 병원 측은 채혈과 검사, 약물 투여를 중단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정확히 나흘 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곁에서 할머니의 임종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김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가 되고 나서야 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됐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목적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법안은 2018년 2월부터 시행되지만, 지금도 환자와 가족들이 사전치료의향서를 작성해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한 경우 병원은 이를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연명치료 중단은 병원의 선택과 결정이 아닙니다. 이는 임종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갖는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함께 인식해야 할 때입니다.
 

오규욱 네덜란드 레이던 아시아센터 연구원
kyuwook.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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