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균형’과 ‘중립’에 관한 고찰

김아람 기자l승인2016.09.13l141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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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입장과 관점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것, 기자의 숙명이자 소명이다. 말이 쉽지 참 어려운 일이다. 기자이기 전에 사람인지라, 세상일이 흑백의 논리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앎에도 특정 관점에 치우쳐 취재를 시작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사실 무엇을 기사화할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입장과 판단이 개입된다고 볼 수 있다. 기사는 누군가가 그것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취재 계획을 세울 때부터 ‘이건 좋아’, ‘이건 나빠’라거나 ‘보나 마나 이렇겠지’라는 전제조건을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기자를 일깨우는 것은 취재 현장이다. 다양한 관점, 생각지도 못한 숨겨진 이야기 등을 고르게 듣고 나면 그때서야 한 사건의 청사진이 그려진다. “기자는 100을 알고 1을 써야 한다”는 선배 기자의 말씀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균형 있고 중립적인 보도를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고, 직접 부딪쳐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균형’과 ‘중립’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특정 입장에서 한쪽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은 편향된 보도가 맞지만, 애초에 완벽한 중립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대학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내 구성원들 간에는 분명한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처럼 불평등한 관계에 놓인 양쪽의 갈등 사안을 균등하게 전달하는 것은 기계적인 균형 맞추기, 중립에 불과하다.

언론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언론의 핵심 기능은 크게 ‘사실 보도’와 ‘비판’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리저리 흩어진 사실의 조각을 진실로 엮어내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사실 보도’라면, ‘비판’은 그 진실을 공익이라는 기준에 비추어 잘잘못을 따져보는 것이다.

후자의 기능을 고려했을 때, 기계적 균형만을 갖춘 보도기사는 좋은 기사라 할 수 없다. 이런 기사를 들여다보면 다들 제 할 말을 했을 뿐 잘못한 사람은 없다. 양쪽이 대립했다는 사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때때로 균형과 중립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언론의 변명거리로 전락하곤 한다. 언론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권력자를 비판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 때, 오직 사실만을 중계하듯 전달하고 균형과 중립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방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의 진정한 균형과 중립을 확립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선배 기자의 말씀을 인용한다. “기자는 100을 알고 1을 써야 한다.” 한 사안에 대해 많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끊임없이 고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언론이 제 소임을 다 할 때, 비로소 사회적 공론의 건전한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대학의 언론인으로서 언론의 균형과 중립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이유다.


김아람 기자  lovingU_ara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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