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길도 한걸음부터

단대신문l승인2016.09.27l수정2016.10.11 11:38l141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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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월. 첫 회사에서 일한 기간이다. 그리고 일을 그만둔다고 그랬을 때 부모님은 경악하셨다. “그래서 뭐할 건데” 라는 물음에 당당하게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거라고 했다. 전문대 체육과를 졸업한 아들이 괜찮은 회사에 다니던 것은 부모님의 자랑이었지만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다. 2015년 3월 27일 에들레이드로 떠나는 날 어머니가 우셨다. 내가 더 잘 지내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하지만 처음 접했던 호주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시티에서 매일 5시간 이상 돌려도 항상 퇴짜맞기 십상이었고 돈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비둘기에게 주는 80센트짜리 빵만 먹던 나는 삼 주 만에 20kg이나 살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외로웠다. 친구, 가족, 직장동료들이 보고 싶었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면 나는 패배자에 이것밖에 안 되는 멍청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고민도 했다. 답은 간단했다. 흔한 워홀러들이 저지르는 실수인 목표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었다. 오만방자했다. 25년 동안 깨우치지 못한 영어를 단 1년 만에 마스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좋은 직장, 많은 돈과 여행, 경험, 다국적 친구와 금발의 외국인 여자친구를 사귀려 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부끄럽다.


꽤 많은 모순과 살고 있었다. 식비는 아까워하는 주제에 한 주에 150불짜리 방에 살았고 영어는 못하면서 어려운 문법만 달고 다녔다. 모든 걸 바꿔야 했다.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서 친구가 사는 퍼스로 지역이동을 선택했다. 그리고 주에 90불짜리 집에 살며 시티잡 뿐만 아니라 농장, 공장, 한인잡 등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돌렸고 자주 쓰이면서 실용적인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일용직 노동, 공장 단기 파트타임, 꽃 농장까지 단계를 거치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어 호주 전역을 여행한 뒤 귀국을 했고, 등고자비(登高自卑)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위해서 한발씩 나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단국대학교에 편입하였고 여러 도전을 하고 있다. 나는 이 값진 깨달음을 예비 워홀러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워홀프렌즈 5기 천안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설명회를 진행할 때 항상 작은 목표부터 잡고 시작하라는 말을 한다.


누구나 첫술에 배불러지고 싶지만, 숟가락은 작고 당신의 손은 두 개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당신이 원했던 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세요” 라는 말을 워홀을 준비하는 단국대생들에게 전달해주고 싶다.

 

조용준(환경원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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