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인택배 - 인생의 2막 위한 노인(努人)들의 힘찬 발걸음
지하철 노인택배 - 인생의 2막 위한 노인(努人)들의 힘찬 발걸음
  • 설태인·이상은 기자
  • 승인 2016.09.27 11:05
  • 호수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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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찾는 노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50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는 1천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2014년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34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에 정부는 ‘고령자 취업 활성화 정책’으로 실질적 대안 모색을 꾀했지만, 대기 인원만 11만명으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노인 일자리사업의 일환인 지하철 노인택배란 만 65세 이상 노인은 지하철 무료탑승이 가능한 현 복지정책을 이용한 택배 사업이다. 서울 시내엔 약 200여개의 실버퀵 업체가 운영 중에 있으며, 그중 시립 노인복지관 산하기관의 10곳을 제외하면 모두 민간업체다.


2004년에 처음 등장한 이후 저렴한 단가와 신속한 배송을 발판삼아 꾸준히 성장한 노인택배…. 지난달, 작년 이용건수가 1만건을 넘은 송파 시니어클럽의 ‘뚜벅이 택배 사업단’을 찾았다.



 

▲ 장기를 두며 배달 주문을 기다리는 택배원들

오전 8시, 기약 없는 기다림
이른 아침 부랴부랴 도착한 석촌역의 뚜벅이 택배 사업단. 서울시 지도와 TV 한 대가 걸려있는 작은 사무실에는 벌써 3~4명의 택배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분 늦게 도착한 것이 무안해 옆에 앉은 택배원 A씨에게 출근시간을 묻자, “나는 이미 7시에 도착했지”라는 태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곳의 택배원들은 누구보다 일찍 아침을 시작한다.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하지만 외출준비와 이동시간을 고려한다면 오전 5시 30분에는 기상해야 한다. 출근한 순서대로 배달을 나가기 때문에 출석부에 먼저 이름을 적기 위해서라도 일찍 도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출근도장을 찍은 뚜벅이 택배원들은 한 손엔 신문, 다른 손엔 커피를 든 채 택배 주문이 들어오길 기다린다.


이날 가장 먼저 출근한 감경문(76) 씨 역시 하릴없이 주문을 기다리는 중이다. 요즘 같은 비수기엔 일거리가 줄어 일찍 도착하더라도 2~3시간 가량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김장록(75) 사업단장은 “여름은 비수기라 하루에 5~60건 배달하는 게 전부야.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그때가 성수기지. 그때 되면 택배 물량은 배로 뛴다니까”라고 설명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택배원은 총 25명. 비수기엔 하루 2~3건, 성수기엔 하루 5~8건의 택배를 배달하는 셈이다. 배달을 나가는 지역도 다양하다. 수도권뿐 아니라 강원도나 충청도까지 발걸음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오전 10시, 시곗바늘과 함께 빨라지는 발걸음
기다림에 슬슬 지쳐갈 때쯤, 사무실에 반가운 벨소리가 울린다.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배달 의뢰 전화가 들어온 것. 오늘의 첫 번째 임무는 꽃집에서 화분을 받아 새로 개업하는 사무실에 배달하는 일이다. 감 씨는 꽃집 이름을 듣자마자 단골손님이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잠실역의 A꽃집에 도착했지만 의뢰받은 꽃 화분은 성인 남자 한 명이 들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그렇다고 배달을 늦출 수는 없다. 배달 완료 시간인 오전 11시까지 남은 시간은 30여분, “화분에 꽂힌 푯말이 빠지지 않게 배달해주세요”라고 당부하는 꽃집 주인의 말을 뒤로한 채 서둘러 탑승구로 향한다. “지하철도 아무 데서나 타면 안 돼. 지금처럼 시간이 충분치 않을 때는 더더욱”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가장 빨리 환승할 수 있는 플랫폼에 발을 올린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종합운동장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배달하다 보면 하루에 10km는 기본으로 걸어. 집에만 있으면 잡생각만 드는데, 이렇게 나와서 운동하니까 좋지”라고 말하는 감 씨. 이동 중엔 무엇을 하는지 묻자 “하긴 뭘 해. 주소지 검색하고 길 찾고 있는 거지”라며 길 찾기 앱을 통해 경로를 확인하는 그의 모습에선 능숙함이 엿보인다.


어느덧 배달 완료 시간까진 10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는 개업 준비로 정신없는 사람들에게 가져온 화분을 건넨다. 영수증에 물건을 전달했다는 서명을 받고, 꽃집에 배달 완료 전화를 걸고 나면 임무는 끝이 난다. 사업장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무사히 배달을 완료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 꽃배달을 하고 있는 택배원


정오, 지친 몸을 뉘일 잠깐의 시간
한 건의 배달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 구내식당이 없는 탓에 회관 앞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오늘의 메뉴는 분식집의 국수와 볶음밥. 점심으로 지출하는 돈은 평균 7천원으로, 이웃 동네인 강남구에 배달 한 번 다녀오는 가격과 맞먹는다. 오전에 한 차례 배달을 다녀왔다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렇지 못 한 택배원은 휴대전화가 울릴까 하는 긴장 속에서 밥을 먹는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식사하던 동료 한 명이 호출을 받았다며 먹던 밥을 남겨두고 성급히 자리를 뜬다.


식사 후에 또다시 찾아온 기다림의 시간. 신문을 읽거나 낮잠을 청하는 택배원들도 있고, 심심풀이로 장기나 바둑을 두는 택배원도 많다. 호출을 기다리는 택배원 B씨는 손녀딸 같은 기자의 등장이 반가운지 옛날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는다.


“정년퇴직 후에 여의도에서 20년 정도 서점을 운영했어. 나중에는 장사도 시원찮고 건물도 철거되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지”라고 얘기하는 그는 노인택배원이 된 지 어언 10년 차다. “과거에는 일감이 많았지만, 요즘엔 하루 두 건도 겨우 배달하지. 여가 생활하면서 용돈 번다고 생각해야지,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긴 힘들어. 어차피 집에서는 할 일도 없으니까…”라고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에서 씁쓸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오후 2시, 다시 거리를 헤매다
오후 1시 반, 사무소의 전화벨이 울린다. 아침부터 차례를 기다리던 장의윤(82) 씨가 배달에 나섰다. 송파구청 앞 법무사무소에 들러 서류봉투를 배달하라는 지시에 장 씨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법무사가 건넨 봉투엔 ‘아차산로13길 B빌딩’이라는 주소가 적혀있다. 지도 앱을 켜서 빌딩 이름을 검색하지만, 성수역 주변엔 같은 이름을 가진 빌딩이 2개나 뜬다. 지하철역에 앉아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동안 벌써 3대의 열차가 지나갔다. 하지만 “바쁘다고 무작정 출발하면 몸도 마음도 고생”이라는 장 씨는 확인 전화까지 마친 후에야 열차에 오른다.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성수역에 도착했건만 이번에는 건물로 찾아가는 길이 말썽이다. 2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엇비슷한 골목들이 이어진다. 세무서 근처에 다다라서 행인을 붙잡고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결국 근처 부동산을 찾아 길을 물어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114에 전화하면 문자로 주소를 알려줬지. 그래도 요즘엔 젊은 학생들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줄 때가 많아서 참 고마워”라고 말하는 그는, 행인에게 두 번이나 길을 더 묻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장 씨 역시 영수증에 수신인의 서명을 받고, 물건을 배달했다는 확인 전화를 잊지 않는다. 고된 길 찾기 탓인지 수신인이 건넨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유독 따뜻하다. 택배 일을 하다 보면 배달이 늦었다고 핀잔주는 사람, 잘못된 주소로 배달을 시키고 연락을 받지 않는 사람 등 온갖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택배원에겐 고객이 우선이요, 손님이 왕이다. “우리가 약자니까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장 씨가 사무소로 돌아온 시간은 3시 반.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 배달지로 가는 길을 검색중인 택배원


오후 5시, 고된 하루를 마치며
이날 하루 총 52건의 배달 의뢰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배달원당 평균 2건의 배달을 한 셈이다. 하지만 한 건당 5천원~1만원 사이를 웃도는 배송 운임에서 중개수수료 20%와 점심값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은 몇천원 남짓이다. 그나마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에서 별도로 지급하는 월급이 있지만, 민간 업체에서는 받기 어려울 뿐더러 수수료의 비율도 높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속·정확·안전’이라는 세 가지 수칙을 지키기 위해 발로 뛰는 그들의 치열한 삶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이른 아침을 시작하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고군분투하는 뚜벅이 택배원들…. 노인들을 위한 복지제도뿐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가 더욱 늘어나길 희망한다.


뚜벅이 택배를 시작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생의 제2막을 열어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인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 위해 오늘도 묵묵하게 발걸음을 내딛는 노인들을 응원한다.

설태인·이상은 기자
설태인·이상은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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