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 기자 <3> 『인간 오성의 탐구』
책읽어주는 기자 <3> 『인간 오성의 탐구』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9.27 11:39
  • 호수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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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관습과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자

"가장 뛰어난 이성 능력과 반성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에 던져졌다면 어떨까 추측해 보자. 그는 실제로, 대상들의 일련의 연속을 직접 관찰할 것이고 한 사건이 다른 한 사건에 뒤따라 일어난다는 것을 직접 관찰할 것이다.” (p.66)
 

당신은 ‘철학책’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 대다수 사람이 ‘철학책은 어렵고, 고리타분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철학책은 어렵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 흄의 1751년 작인 이 책도 마찬가지다. 본문보다 긴 각주와 낯선 낱말로 뒤덮인 문장을 읽고 있자니 이쯤 되면 독서보단 원문을 직접 번역하는 게 쉬울성싶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잘 쓰인 철학책이야말로 우리를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이끄는 동시에,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들과 한 걸음 떨어질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흄이 이 책을 펴낸 18세기 철학 사상의 주된 흐름은 인간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였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아퀴나스 또한 “이성이란 신에게 부여받은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라는 문장이 견고하게 뿌리내린 사회에서, 흄은 인간의 생각보다 제한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역설한 것이다.


당시의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이 ‘본유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2 더하기 3은 5’라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해서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흄은 이렇게 주장한다. 본유관념은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일 뿐이라고. 마찬가지로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성이다’라는 사실이 불변의 진리일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주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흄이 이성보다 경험을 가치 있게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본유관념을 제외한 모든 지식이 ‘관찰’에서 비롯되며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야말로 우리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고 말한다. 사실 지식의 대부분은 이성보다는 경험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절대적인 진리처럼 보이는 지식도 인간이 오랜 시간 관찰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우주의 원리부터 사회규범까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진리들은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불완전한 지식에 불과하다. 정교하게 쓰인 흄의 논리를 읽고 있자면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의심해보고, 나를 둘러싼 오랜 관습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그의 주장을 훑어본 당신은 여전히 철학책은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소보다 조금 더 전투적인 마음으로 임한다면 못 해낼 이유도 없을 터, 이 가을엔 철학책 한 권 읽어보는 게 어떨까.


<이 도서는 우리 대학 추천도서목록에서 선정함.>

 

저 자 데이비드 흄 책이름 인간 오성의 탐구 출판사 고려원 출판일 1996. 7. 20. 페이지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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