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탐구⑨ 평화

평화를 노래하라 장유정 교양학부 교수l승인2016.09.27l수정2016.09.27 15:38l141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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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의 나라>가 수록된 한대수의 ‘멀고 먼-길’

지난 21일은 UN이 지정한 세계의 전쟁과 폭력이 중단되는 ‘평화의 날’이자 ‘총성 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런 날이 무색하게도 지금 세계는 많이 아프다. 세계 여기저기서 전쟁과 테러 등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진과 그 여파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외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내적인 혼란과 혼돈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평화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TV에 가수 윤복희가 나와서 자신이 1970년대 북아일랜드 전쟁 당시 전장에서 공연했던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 전쟁이 잠시 멈췄고, 마지막 곡인 <대니 보이(Danny boy)>를 부를 때는 적군과 아군 할 것 없이 모두 울면서 그 노래를 합창했다고 한다. 비록 그녀가 자리를 뜬 다음에 전쟁은 다시 시작됐으나 어린 마음에도 나는 노래가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것에, 잠시나마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지금 여기서 평화의 노래를 살펴보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광복 이전과 광복 이후, 6·25 한국 전쟁과 휴전을 거치면서 나온 대중가요 중 제목에 직접 ‘평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전쟁의 참혹한 실상, 이산(離散)의 아픔, 피난살이의 설움 등을 노래해서 역설적으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일깨워주는 노래는 많다. <전선야곡>, <전우야 잘자라>,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모두 그러한 예이다. 전장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군인의 노래, 피난 중에 죽은 자신의 딸을 절규하듯 그리며 부르는 노래, 부산에서의 피난살이 설움을 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노래, 흥남 부두 철수 당시 헤어진 금순이를 찾는 노래 등…. 그들 모두 그저 평화를 갈구했던 보통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다.


남녀 간의 사랑을 주로 노래한 대중가요에서 평화를 소재로 한 노래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대수가 18살인 고등학교 시절에 만들었다는 <행복의 나라>는 대표적인 평화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 나는 지독한 가난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책과 노래였다. 『가요대백과사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 두꺼운 책에는 서유석의 <가는 세월>부터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까지 가나다순으로 실려 있었다. 나는 <가는 세월>부터 해서 몇 시간 동안 그 백과사전 속의 아는 노래들을 한 곡 한 곡 차례로 불렀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행복의 나라>로 마무리할 때면 마음속에 평화가 밀려오곤 했고,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부분을 부를 때면 미소가 절로 번지곤 했다.


1978년, 사랑과 평화의 1집 음반에 수록된 <어머님의 자장가>도 평화의 노래로 볼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자장가를 듣고 싶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는 자장가보다 더한 평화의 노래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1994년의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 삽입곡인 <서울, 이곳은>을 불러 이름을 알렸던 장철웅의 <내 마음의 평화>도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노래이다. 아울러 CCM 가수로 활동하는 홍순관이 천상병의 시 <귀천>에 음악을 얹은 노래, <귀천>도 아름다운 평화의 노래이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그저 잠시 지구별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을 ‘소풍’이라 하고, 그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리오. 이 시를 쓴 천상병 시인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가 고통 뒤에 비로소 찾아온 평화와 안식이란 걸 알 것이다.


2000년대에 오면 평화롭지 않은 모습을 그려서 역설적으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손병휘의 음반 ‘촛불의 바다’에 수록된 많은 노래들이 그러하며, 한대수의 <멸망의 밤>과 이정현의 <평화> 등이 모두 그러하다. 평화롭지 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현실을 고발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정현의 <평화> 뮤직비디오 첫 장면에 나온 것처럼, 평화로 가는 길은 사실상 평화밖에 없다.


얼마 전 시리아 내전의 비극을 보여준 사진 한 장이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다. 옴란 다크니시라는 소년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핏자국으로 얼룩진 모습과 초점 없는 시선으로 전쟁의 참상을 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6살의 알렉스란 소년이 옴란을 자신의 동생으로 삼고 싶다며 미국 대통령 오바마에게 편지를 보냈다. 오바마는 “알렉스는 국적, 외모, 종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냉소적이거나 의심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지 않은 어린이”라며, “우리는 모두 알렉스보다 나은 사람이 돼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변한다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라”고 했다.


평화의 노래가 평화를 당장 가져다줄 수 없을지라도 노래를 듣고 부르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는 있다. 내면의 평화든 외면의 평화든, 우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적도, 외모도, 종교도, 성별도, 계급도, 지위도 그 무엇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거나 해할 수 있는 이유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린 모두 각자 이 우주의 단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지길, 우리 마음에 평화가 함께 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장유정 교양학부 교수  dkdds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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