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별신굿 이수자 이호윤 : 나만의 음악,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다
남해안 별신굿 이수자 이호윤 : 나만의 음악,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다
  • 이영선 기자
  • 승인 2016.09.27 15:44
  • 호수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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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별신굿 이수자 이호윤(국악학·석사과정·09졸) 씨

"국악,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길"


Prologue
국악이란 예로부터 전해 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을 말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그 가치와 전통은 깊지만, 최근 다양한 문화의 유입으로 설 자리가 위축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15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전국에서 행해진 공연 중 17.7%가 국악공연으로, 연극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또 관객 수는 33.7%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정식 공연시설에서의 공연횟수는 2.6%에 불과했고 관객 수는 3%에 그쳤다. 대부분의 국악공연이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곳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공연의 질적인 부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국악가가 퓨전국악의 개발과 타 장르 뮤지션과의 협업 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국악에 힙합, 전자사운드, 라운지, 재즈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이런 추세를 선도하고 있는 이호윤(국악학·석사과정·09졸) 씨를 만나 그의 음악인생을 들여다봤다.


▶국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시며 서예작가로 활동하셨고, 어머니는 소설가이면서 그림을 그리셨다. 또한 부모님께서 피아노, 기타, 대금, 장구 등 여러 가지 악기를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이런 가정환경 덕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예술분야를 접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국악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국가지정문화재 남해안 별신굿 이수자이다.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이수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인 ‘굿’을 주요 작품 소재로 삼는 국악밴드인 ‘대한사람’ 활동 중에 남해안 별신굿 보유자이신 정영만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남해안 별신굿 제의식 전반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가족이 됐다. 그렇게 굿을 공부한 지 벌써 12년째다.

▶이수하면서 느낀 어려움은 없었나.
단골, 승방, 무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15년에서 20년가량을 공부한 후 굿판에 선다. 그만큼 힘든 일이다. 학문적·음악적으로 접근하면 열이면 열 다 도망간다. 스스로 매력을 느끼고 즐겨야 한다. 어려움이라고 하면 사회적 인식도 한몫한다. 많은 사람이 굿을 문화가 아닌 잘못된 종교라고 생각하는데, 별신굿은 신을 받는 굿이 아니라 배워서 하는 세습무다.

▶본인이 생각하는 국악의 매력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움이다. 국악은 오랜 시간 검증받아온 음악이다. 우리의 역사와 함께했고, 우리만의 문화를 담고 있다. 예술적 가치로는 완벽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이고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국악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음악어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악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 접목한다.
내 작업은 생각을 소리로 표현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할 뿐이다. 의도적으로 다른 장르와 접목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소 즐겨 듣는 장르가 다양하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공부해왔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힙합과 전자사운드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어느 하나에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기보다 취미라고 생각하며 즐기다 보니 그런 것 같다. 힙합과 전자사운드 장르도 오래 했고, 최근 색소폰을 접하며 재즈도 하게 됐다. 빅 밴드, 바로크 음악도 좋아한다. 양식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요리도 좋아하고, 시간이 날 때면 그림도 그린다. 국악을 전공해서 국악 하는 사람이 됐지만 나는 잡다한 놈이다.

▶해외공연도 펼치고 있다. 어떤 공연·활동을 했나.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원 등의 초청으로 공연한 적이 있고, 클럽파티나 JAM(즉흥연주)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지난 17, 18일에는 현재 주력하고 있는 국악라운지밴드 ‘타몽’으로 일본 가나자와 재즈 스트리트에 참가했다.

▶해외에서 공연할 때 관중의 반응은 어떤가.
해외공연을 할 때는 퓨전 음악보다 전통 색이 짙은 음악을 들고 간다. 해외 관객은 오히려 그런 것에 더 호응한다. 주로 유럽을 많이 가는데, 다양한 음악시장이 잘 형성돼있다. 궁중 잔치에서 이뤄졌던 종합예술인 궁중정재 공연을 하고 기립박수를 30분가량 받아본 적이 있다. 퓨전음악이라고 어설프게 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의 전통음악을 하는 것이 잘 통한다.

▶우리나라에서 국악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줄어든 대중의 관심이 아쉽지는 않나.
대중에게 아쉽다기보다 전반적인 전통음악시장에 아쉬움이 있다. 정재(궁중에서 여령이나 무동, 지방 관아에서 기녀들이 공연했던 악가무의 종합예술)는 바른 자세로 감상하는 것이 맞지만, 민속음악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극장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탓에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판의 음악이 재현된다. 공연자와 관객이 서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 장치를 생각하고 기획하는 문화기획자나 연출가가 많이 배출돼야 하는데, 대중성과 사업성을 따지다 보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연에 현대인, 특히 청년들이 공감하기 쉬운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한다.
현대에 전통음악이 살아 있으려면 현대인들이 공감할만한 소재를 가지고 음악을 해야 한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에 대한 소재를 주로 다룬다. 예를 들면 취업준비생의 스트레스 같은 것이다. 무대 위에서 하는 멘트와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1천여차례의 공연을 해왔다. 본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의미 있는 공연은 무엇이었나.
정말로 이 일을 그만두고 싶게 만든 공연이 있었다. 26살 때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러 팀과 함께 6개월 동안 공연을 했었다. 공연 콘셉트가 굉장히 신나는 것이었는데 당시 멤버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다. 그 상황에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고 멤버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중압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연자라면 관객에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기 위해 그 감정 상태에 빠져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상과의 괴리감을 이겨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계속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 지금은 음악을 하는 이 생활이 너무 행복하지만, 싫증이 난다면 과감하게 그만둘 것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할 이유가 없다. 작업실을 갖는 게 꿈이었는데 앞으로 평생 작업할 수 있을 만큼의 과분한 작업실을 가졌으니 꿈도 이뤘다.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받고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이 떠올랐다. 그의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여러 색의 물감이 이리저리 튀어있는 질감으로 표현돼 난해하면서도 자유롭다. 나 역시 음악적인 뿌리는 국악에 있지만 다양한 장르와 분야를 즐기는 알록달록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접할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내일 세상이 끝나거나 혹은 오랫동안 살 수 있는데 죽을 때까지 제일 좋아하는 일 한 가지만 하고 살아야 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아마 대답하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헷갈려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착각한다. 죽을 때 ‘내 인생은 참 꽉 찼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려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맞다. 그것이 비록 생산성과 동떨어져 있을지라도 말이다. 내일 행복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마라. 행복한 것이 참 많은 세상이다. 그것을 좇으며 살면 좋겠다.


Epilogue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한 작업실과 그 속을 가득 채운 그의 그림과 악기, 음반들…. 그곳에서 작업하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하는, 이 단순한 행복의 룰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는 너무나도 단순한 질문에 끝내 답하지 못한 나에게 자문한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모른 체하며 행복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끝으로 나와 같은 청춘들에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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