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 김선기 발행인 : 20대를 규정하는 세상에 ‘고함칠 권리’를 외치다
‘고함20’ 김선기 발행인 : 20대를 규정하는 세상에 ‘고함칠 권리’를 외치다
  • 설태인 기자
  • 승인 2016.10.11 11:32
  • 호수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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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독립언론 ‘고함20’ 김선기 발행인
▲ 출처: 양희석 작가

"저널리즘이란
사회를 변화시키는
가치 있는 운동"

<Prologue>
N포세대, 금수저, 문송합니다…. 청년과 관련된 신조어가 쏟아지는 시대다. 청년실업이나 부의 불균형 등 20대를 겨냥한 다양한 신조어는 오늘날 청년들의 모습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명쾌한 용어로 쓰인다. 그러나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이런 신조어들은 고정관념으로 작용해 자칫 20대를 주체적인 개인보다 하나의 틀로 바라보게 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세상을 향해 김선기(28) 씨는 20대의 ‘고함칠 권리’를 요구한다. 2009년 봄, 학내 미디어 관련 강의 뒤풀이에서 만난 5명의 학우와 함께 20대 독립언론 ‘고함20’을 만들었다는 김 씨. 이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는 기자와 편집장을 거쳐 발행인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김 씨를 만나 오늘날의 언론과 청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20대를 위한 언론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20대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나 20대의 이야기를 하는 매체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시 멤버들이 모두 20대였는데, 칼럼이나 리뷰를 쓰면서 20대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자연스레 모였다.

▶ ‘고함20’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이름 짓는 회의를 두 달 정도 하던 중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다. ‘고함’은 영어로 ‘announce(알리다)’나 ‘shout(소리치다)’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써 ‘GO함’도 된다. 고양시의 ‘~했고양’처럼 ‘~했다고 함’이라고 쓸 수도 있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면서 언론과 관련된 단어이기때문에 만장일치로 정해졌다.

▶ 고함20을 시작할 당시 사회에 고하고 싶던 말이나 메시지가 있었을 것 같다.
사회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건 아니다. 대학교 2학년 때 고함20을 만들었는데 1학년 생활을 돌아보니 공부든 놀이든 제대로 한 게 없다고 느껴졌다. 문제의식 같은 경우는 오히려 고함20 활동을 하면서 생겼고, 2009년 신년목표로 ‘글 100개 쓰기’를 잡았는데 그 목표를 이룰 기회라는 생각이 더 컸다.

▶ ‘글 100개 쓰기’는 학보사에 들어가서도 이룰 수 있는 목표다.
나한테 학보사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학보는 읽는 사람이 별로 없고, 그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 내부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학보가 다루는 일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해서 많은 사람이 내 글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본인이 학보를 잘 읽지 않는 이유도 학내 문제에 관심이 가지 않아서인가.
학생회나 동아리연합회가 무슨 일을 하고 학교에서 어떤 건물을 짓는지는 내게 별로 흥미 있는 뉴스가 아니었다. 지금은 학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가 안 쓰여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 독립언론에서 활동하다 보면 학보사의 한계가 많이 보일 것 같다. 그럼에도 학보사가 가지는 의미가 있다면.
학보사의 설치근거가 대학에 있다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한계 안에서든, 자치언론이나 독립언론처럼 한계 밖으로 나와서든 뭔가를 해보려는 노력 자체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일간지가 국가·기업의 편만 든다면 비판할 수 있지만 제도 밖으로 무조건 나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학보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그걸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자치언론은 학교에서 인터뷰를 꺼리기 때문에 칼럼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학보사는 그렇지 않으니까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도 더 많을 것이다.


▶ 그렇다면 고함20이 가지는 한계는 무엇인가.
일단 한국은 비영리적인 독립언론이나 대안언론 등에 대한 지원이 없다. 그래서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나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고, 20대 언론을 표방하지만 20대 전체의 이슈를 다룰 역량도 안 된다. 대학생뿐 아니라 사회초년생, 고졸자, 금수저 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 커버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 그런 한계와 어려움에도 굳건히 고함20에 남은 이유가 궁금하다.
이건 고하미(고함20 기자)들에게도 많이 하는 질문이다. 돈도 많이 안 주고 큰 스펙이 되지도 않는데 왜 하냐고. 아마 글을 쓸 때나 사람들이랑 관계 맺을 때 자유롭고 편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다. 20대 언론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보람차기도 하다.

▶ 7년 동안 활동하면서 100개가 넘는 기사를 썼다. 기억에 남는 기사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2009년에 기획한 ‘학내 페미니스트 인터뷰 3부작’이 기억난다. 인터뷰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기사였고, 에피소드라면 예전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됐던 적은 있다.

▶ 기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 읽히는 것. 흐름을 따라 읽을 수 있는 문장과 문단을 쓰려고 노력하고, 주장만 나열하거나 사실과 관련 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겠지만 읽는 사람에게 신선한 통찰력을 주거나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그동안 본인이 쓴 기사나, ‘청년 문제를 세대론에 함몰되지 않는 방식으로 다룬다’는 고함20 소개글을 보면 20대가 어떤 단어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듯 보인다.
나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 의해 집단적으로 규정당하는 것이 불편하다. 예를 들어 ‘3포 세대’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신조어가 등장하기 전에는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문제였지만, 연애·결혼·출산을 ‘안 하냐 못 하냐’의 틀에 갇혀 생각하게 된다. 기성세대가 만든 이런 말들은 20대가 자신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고함20은 적극적이고 세밀한 언어를 사용해 이를 거부하려 한다.

▶ 그동안의 언론 공부와 고함20 활동을 통해 정의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저널리즘은 사회운동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권력층의 비리를 폭로하는 것은 사회를 청렴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널리즘은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고함20 또한 청년 문제를 잘 다뤄서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청년들 스스로가 처한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창을 제시하는 운동의 일종이다.


▶ 그렇지만 신문을 읽는 독자는 점점 줄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 언론의 문제는 조회수로만 좋은 기사를 판단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운동적인 측면에선 ‘기자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전파돼 변화를 이끌지’가 중요하다. 1만명이 봤지만 기자와 이미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일 때와, 500명이 봤지만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이 기사를 보고 행동에 옮겼을 때 중 후자가 더 의미 있다고 본다. 글의 가치를 조회수로 좌우한다면 네이트판이 가장 가치 있을 것이다. 결국엔 고함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는 건데, 기자로서 얼마나 의미 있는 생각을 넣을 수 있느냐, 어떤 변화를 이끌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 30대가 코앞이다. 30대가 되면 고함20을 그만둘 건가.
그럴 계획이다. 지금처럼 읽고, 쓰고, 생각하고, 발언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청년 문제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고함20을 하면서 발달시킨 문제의식들을 논문으로 잘 엮어 내는 게 목표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생각하기엔 어떤 색깔인지 묻고 싶다.

▶ ‘회색’이다. 치우치지 않되 깊이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회색도 좋아하지만 방금 떠오른 건 ‘코발트 끼가 있는 남색’이다. 파란 톤이 청춘을 띄기도 하고, 남색은 밤이나 잔잔한 바다 느낌이 든다. 코발트 끼를 섞은 건 그 안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유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인터뷰를 끝까지 읽은 것에 대해 대단하다는 말을 전한다. 수고 많으셨고, 행복하시고, 고함20도 한 번 들어와 주시라.
 

<Epilogue>
언론이나 청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제 생각을 분명히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그가 ‘청년연구가’라고 불리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는 질문에 “고함20을 8년 동안 했다는 것 자체가 노력”이라고 답하는 모습에선 우직함도 엿보였다.
그동안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조어를 보며 스스로 그 틀에 해당하는지 확인하며 초조해하고, 다른 20대와 나의 처지를 비교하던 모습이 새삼 부끄러워졌다. ‘내가 어떤 집단에 속해있나’보다 중요한 건 ‘나라는 개인이 무엇을 꿈꾸는가’이다. 청춘은 짧고, 이제는 ‘청년 A’가 아닌 ‘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다.

설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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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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