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손님
  • 이지은(국어국문·3)
  • 승인 2016.10.11 11:38
  • 호수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전 내내 흐리다 싶더니, 세 시가 되어서야 빗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익숙한 참치캔을 챙겨 들고 창문 너머를 잠시 바라본다.


작년 사월쯤이었나. 작은 마당 구석, 계단 아래에 비를 피해 모여든 고양이를 만난 건. 당시엔 비쩍 말랐던 검은 코숏 한 마리와 특이한 무늬의 노란 점박이 한 마리였다. 지친 얼굴이 안쓰러워 참치캔을 하나 따 줬더니, 이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녀석들이다.


그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 무렵도 그쯤이었다. 혼자 살기엔 넓은 집이라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던 쪽은 당시의 남자친구였고,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얼결에 시작된 반 년간의 동거생활은 무척 꿈같았다. 돌이켜 보면 그렇다는 소리다.


그에게 여자가 생긴 걸 알게 된 후로,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대책 같은 건 마련해 놓을 수 없었다. 그저 지나치게 많은 웃음이나 약속이나 입맞춤을 저질러왔다. 날 껴안고 잠드는 일을 가장 좋아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남겨진다는 건, 믿기지 않을 만큼 참 쉽고 간단한 일이더라.


마침내 그의 마지막 흔적이 버려지던 날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나는 전보다 더 넓어진 텅 빈 집에서 내내 우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주 크게 티비를 켜 놓고,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의 캐롤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해가 갔다. 새해를 맞고도 고양이 두 마리는 어김없이 비와 함께 나타났다. 무심코 그가 부르던 이름으로 녀석들을 부르다 주저앉아 운 적도 있다. 서러움에 비를 쫄딱 맞으며 울고 소리를 질러도, 고양이 두 마리는 그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위로가 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주겠다는 것처럼. 나는 늘 녀석들에게 빚을 졌다.


비 오는 날마다 마당을 내어준 지도 어느새 1년이 넘었다. 그새 두 마리 모두 살이 좀 붙어 제법 덩치가 커졌고, 녀석들만큼이나 나도 많이 자라 좀처럼 울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그를 잊었느냐 한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창밖을 가만 바라본다. 한동안 비 소식이 없어 녀석들을 오래 보지 못했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좀 걱정하고 있던 찰나.
슬그머니 나타난 검은 고양이와 노란 점박이 고양이, 그리고, 녀석들의 입에 물린 작은 두 개의 목덜미.


나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숨죽여 놀란다.
손님이 늘었구나.


새로운 생명을 물고 온, 이제는 어엿한 가족이 된 녀석들을 바라본다. 쉽게 곁을 지내다 간 사람을 떠올린다. 그저 잠시 머물다 갈 손님임을 알았더라면, 당신과 가족을 꾸리는 일 따위 상상하지 않았을 텐데. 우스운 기분이다.


찬장을 살펴 참치캔을 하나 더 꺼내다, 구석에서 마른미역을 집어 든다.
특별한 날이다. 어김없이 비가 내리는, 텅 빈 이곳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