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24시 - 시민의 발은 오늘도 달린다
지하철 2호선 24시 - 시민의 발은 오늘도 달린다
  • 이영선·이시은 기자
  • 승인 2016.10.11 12:15
  • 호수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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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지하철, 되찾아야 할 주인의식”

Prologue
서울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하철 1~9호선의 이용객수는 하루 평균 720만명에 달한다.(2014년 기준) 산술적으로 국민 10명 중 7명이 하루에 한 번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셈이다. 또한 한국교통연구원은 교통수단 중 지하철의 수송 분담률이 가장 높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민의 발’ 역할을 충실히 다하는 지하철은 최근 빈번한 안전사고와 각종 범죄로 얼룩지고 있다. 실제로 지하철 범죄는 2012년 1천440여건에서 지난해 2천620여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성추행·몰래카메라 등의 성범죄로, 2012년 780건에서 지난해 1천660여건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그 중 2호선이 가장 많은 성범죄 건수를 기록했고 9호선과 1호선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달 30일, ‘안전 사각지대’로 인식된 지하철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자 24시간 북적이는 2호선에 몸을 실었다.


해가 뜨면 어김없이 ‘지옥철’이 시작된다
출근·등교시간인 아침 8시의 사당역은 직장인과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짜증철’, ‘지옥철’, ‘콩나물시루’라 불리는 악명 높은 출근시간 2호선 지하철을 마주한 사람들은 멍하니 한숨만 푹푹 내쉰다. 긴 줄의 끝에 서서 떠나는 전동차를 바라보길 수차례, 겨우 전동차에 올라탄다.


선선한 날씨에도 열차 안은 탑승객들의 체온으로 숨이 막혀온다. 당장 다음 역에서 하차하고 싶지만 꿈쩍 않는 사람들 틈에선 어림없다. 밖의 날씨와 사뭇 다른 실내온도에, 두툼하게 입고 나온 이용객의 손부채질이 멈출 줄 모른다.


3년째 2호선으로 통근을 하고 있는 김은경(29) 씨는 “매일아침 출근전쟁이 따로 없다.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진이 다 빠져있을 정도”라며 “여름엔 악취와 습기로, 겨울엔 난방과 사람들 입김으로 갑갑하다”며 하소연한다.


이에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메트로 1~4호선에 접수된 민원 중 냉난방 관련 민원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회사 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고 답한다.

 

현장포착1   끊이질 않는 성범죄와의 전쟁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 정도로 열차가 꽉 차있을 땐 손잡이도 필요치 않다. 탑승객들은 그저 서로 기댄 채 목적지를 향한다. 흔들리고 부딪히고…. 다른 사람과 몸이 닿지 않도록 어깨를 움츠리지만 승하차시의 부득이한 접촉은 막을 길이 없다. 때문에 불쾌한 목적의 접근도 분별하기 어렵다.


이날 역시 짧은 치마가 신경 쓰이는 듯 한 여성이 계속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주변의 남성들은 괜한 오해를 살까 두 손을 모은 채 먼 곳만 응시하는 민망한 모습이 연출된다.


한편 역이나 전동차 안의 안전을 담당하는 서울지하철경찰대 대원들은 24시간 지하철 곳곳을 누비며 현행범들을 잡기 바쁘다. 왕십리역의 서울지하철경찰대 본대 사무실에서 만난 수사3반장 A씨는 “우산 끝이나 신발 끝에 카메라를 부착하여 신체 일부를 촬영하는 등 다양한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더불어 “신고를 받고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피해자가 일이 커질 것에 겁을 먹고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한다.

 

현장포착2   전단지·잡상인 등 각종 불법상업행위


점심시간이 지나 비교적 한산해진 열차 안을 살펴보니 출입문과 광고판 위, 바닥 곳곳에 부착된 불법전단지들이 눈에 띈다. 때마침 나타난 지하철 미화원 B씨와 함께 불법전단지 수거에 나선다. 한 칸만 지났을 뿐인데도 전단지가 손에 한가득이다.


B씨는 “주기적인 단속으로 예전에 비해 그 양이 줄긴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붙이고, 누군가는 떼니 일이 끝이 없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빠른 걸음걸이와 숙련된 손놀림은 그간의 근무량을 짐작케 한다.

이어 자리에 앉자 가득 찬 수레와 큰 목소리의 잡상인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마늘껍질박피기’를 판다며 마늘을 꺼내들고 바닥에 앉아 시범을 보인다. 삽시간에 퍼진 마늘 냄새가 코를 찌른다. 탑승객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중년의 여성들에게 접근해 호객행위를 이어간다.

 

현장포착3   빛바랜 분홍색, 만인의 임산부 배려석


저녁 어스름이 찾아온 시간, 퇴근길의 지하철은 다시 북적이기 시작한다. 직장인 군단이 합류한 지하철 행렬 속에서 배려는 사라진 지 오래다.


회색 좌석들 사이 등받이와 좌석, 바닥까지 핑크색으로 도배돼 있고 바닥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 임산부 배려석이 눈에 띈다. 하지만 버젓이 적힌 문구가 무색하게 자리를 꿰찬 한 남성에, 정작 만삭의 임산부가 자리에 앉지 못해 서서 손잡이에 몸을 맡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같은 칸을 이용했던 정미영(24) 씨는 “임산부인지 몰랐다고 발뺌하기엔 말도 안 된다”며 “임산부인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엔 서로가 불편을 감수해야겠지만, 남성이 앉아있는 건 이미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좌석의 의미부터가 퇴색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장포착4   “잠시만요, 저까지만 봐줘요”
저녁 7시, 퇴근시간에 맞춰 강남역에 정차하니 하나 둘 몰려들어오는 인파에 간신히 자리를 지킨다.


한숨 돌리던 중 이내 “잠시만요”라고 외치며 닫히는 전동차 문을 향해 한 여성이 돌진한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이에게 한 시가 바쁜 이용객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꽂힌다. 지난 2년간 지하철로 통학을 해온 송혜원(21) 씨는 “급박한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닫히는 문을 열면서까지 타려는 행동은 위험천만하다”며 불만을 표한다.


전동차 하차 후에도 진풍경은 이어진다. 무임승차 혜택이 제공되는 만 65세 이상 노약자, 국가유공자, 장애인은 무임승차권을 제시하면 비상게이트를 지나 역내로 입장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이트를 연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노약자 두 명을 쫓아오던 한 남성이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함께 역내로 들어온다. 역무원을 흘깃 보더니 냅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내 씁쓸해진다.


무임승차단속과 지하철 이용 안내를 담당하는 건대입구역 역무관리실 최규현(50) 차장은 “이미 꽉 찬 전동차에 무리하게 승차하거나, 닫히는 문사이로 뛰어들다 승강장 출입문에 끼어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분들이 있다. 이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안전을 위해 여유를 가지고 다음 열차를 기다릴 것을 당부한다. 덧붙여 “지하철 운임 관련 서비스 향상과 안전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이용객들의 올바른 시민의식과 주인의식이 바탕돼야 한다”고 말한다.

Epilogue
막차시간, 2호선을 나서며
자정, 지하철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니 몸은 녹초가 됐다. 막차에는 취객과 노숙자, 밤늦게 회식을 마친 직장인으로 가득하다.


하루에 수만명, 각자의 종착지를 가진 이들이 지하철을 이용한다. 이용객의 편의와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오늘도 잠을 설칠 지하철 관계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더욱이 지하철 속 문제현장들을 포착하고 나니 새삼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본지의 인터뷰를 통해 지하철 관계자들이 전했던 작은 당부가, 승객들의 인식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이영선·이시은 기자
이영선·이시은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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