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수난, 뿌리깊은 나무의 정신을 잇자

이상은 기자l승인2016.10.12l141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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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과 학생들은 흔히들 ‘국문충’이라 불린다. 이는 잘못된 맞춤법을 쓰는 이에게 “그건 문법에 어긋나!”라며 지적을 하는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다. 국문충을 화나게 하는 문장으로 ‘ ’라는 문장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얼마 전 한 언론사에선 ‘연예인 A 명예회손 혐의’라는 제목의 기사가 작성된 바 있다. 이처럼 정확성이 생명인 기사마저도 맞춤법 앞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70돌이 되는 날이자, 2012년에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된 이후 4번째로 맞이하는 한글날이다. 일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국경일로 재지정된 한글날의 지위가 다행이나, 한편으로는 괜스레 씁쓸해진다. 지난 7월 정부 관계자가 발표한 ‘요일 지정 대체공휴일’ 후보에 한글날이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얄팍한 경제논리에 뒤처져 한글날은 더는 한글날이 아닌 ‘쉬는 날’로 인식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볼만했다.
 

훈민정음은 ‘나랏말싸미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며 한글 창제 이유를 밝힌 ‘예의(例儀)’와 자모음 상형원리를 설명한 ‘해례(解例)’로 나뉘어 있다. 예의는 「세종실록」과 같은 고문헌에 전해져 내려왔지만, 해례본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1940년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린 해례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문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1446년 9월 상순(上旬)에 반포됐다고 하는데,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하면 10월 9일이 된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에 입각해 한글날을 지정한 것이다.
 

수많은 문자 중에서 창제원리, 목적, 세계관 등을 모두 전하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무이하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언어학자 라이샤워 교수는 “한글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모든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다”며 칭송을 보내곤 했다. 심지어는 한국인들도 참가하지 않는 한글날 백일장 대회에서 외국인이 상을 타오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글은 탄생부터 온갖 고난을 겪었다. 창제 당시 지배층의 반대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어문말살정책까지 숱한 기간을 ‘언문’으로 살아왔다. 그때마다 우리의 선열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우리말을 잃지 않기 위해 한 몸 내던졌다. 우리말을 잃음은 민족정신과 얼을 빼앗기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정신은 ‘애민정신’과 ‘위민정신’이다. 세종대왕은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겨 한글을 창제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러한 정신에 보답하고 있는가? 매년 지금과 같은 시기엔 우리말 의식을 고취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한글날 행사들이 기획되곤 한다. 그러나 매번 이때뿐이다. 한글날을 맞아 SNS에 용비어천가를 올리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아름다운 우리 한글’로 바꾸면서 하루가 지나면 대화창에서는 욕설과 줄임말이 오간다. 이런 주인의식을 잃은 행보에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다. 
 

“말과 글을 잃으면 민족도 멸망한다”는 주시경 선생의 말씀을 되새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던 한글, 더는 그 아름다움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상은 기자  3215318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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