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시선 10.임신중절수술

생명의 가치, 아이러니한 우선순위 논쟁 이시은 기자l승인2016.11.08l수정2016.11.08 22:04l141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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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1] 산모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 발 디딜 틈 없던 취업 시장에서 벗어나 내 자리를 꿰찬 지 두 달. 자랑스레 사원증을 목에 걸고 집을 나서던 기분 좋은 출근길은 더 이상 없다. 
“임신 4주차입니다.” 수십 번 되물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당장 회사는 어떻게 할지, 부모님께 무슨 말부터 전해야 할지 어지러운 마음에 머리가 핑 돈다. 두렵고 무섭다. 신입사원인 내게 육아 휴직은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 뱃속의 아기와 함께 하려면 직장을 담보로 해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아기를 낳을 순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아찔한 현실에 부딪힌다. 취업 준비에 적금까지 탈탈 털어 쓴 마당에 벌써 결혼까지 생각해야 한다니 가야 할 길이 너무나도 멀다. 회사 동기생들보다 한참이나 뒤처질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여의사가 임신중절수술을 도맡아 해줘요.” 의사 선생님이 툭 던진 한 마디. 어둠 속 한 줄기 희망일까. 썩은 동아줄일까. 거액의 수술비를 감당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임신중절수술은 법으로 금지돼 ‘안전한 환경’은 바라지 말라는 말에 한 번, 수술 사실이 발각되면 의사와 산모가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분통이 터진다. 
언제까지 실효성 없는 법의 굴레 속에 갇혀있어야 하는가. 법의 굴레 속에 산모의 생존권은 외면당하고 있다. 아이를 낳게 돼도 산모와 아이에게 모두 절망적인 현실. 갑작스러운 임신에 태어난 아기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언제쯤 갖춰질지, 뱃속 아가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 [View 2] 태아
이제 막 눈을 떴다. 세상의 밝은 빛에 설레던 것도 잠시, 초음파로 나를 들여다보는 엄마, 아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예상 밖이었던 나를 보는 눈빛에 원망이 가득하다.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불안감과 초조함은 숨통을 조인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다. 며칠 후면 긴 작대기가 엄마 몸을 타고 들어와 나를 으깨버린다고 한다. 방금 들은 게 사실일까.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고받아야 하는지.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아야만 하는지.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라던 날들이 떠오른다. 애초에 내가 없었다면 엄마와 아빠가 훨씬 더 행복했겠지.  
엄마의 포근한 품, 아빠의 애정어린 눈빛은 곧 한 줌의 먼지가 될 내게 사치스럽다. 내 얘길 동생은 알게 될까.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동생만큼은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태어나길 바라본다. 내 몫까지 행복하길, 부디 사랑받는 삶을 살길 바란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임신중절수술
산모의 생존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화두다. 어느 한 쪽도 쉽사리 물러설 수 없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한 쪽에 우선순위를 두기에 앞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임기 여성의 34%는 임신중절수술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는 임신중절수술을 법으로 금지해 산모를 처벌하고 있다. 나아가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담당 의사도 함께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임신중절수술은 연 17만건. 이 중 법에서 명시된 처벌 예외 사유는 불과 5~10%다. 임신중절수술을 택하는 대다수는 사회·경제적 사유 때문인 셈이다. 이에 법과 현실의 괴리를 문제 삼는 이가 많다. 관련 법안들이 현실의 문제에 한 발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이시은 기자  3214338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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