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인권이야기 6. 노동권
우리가 몰랐던 인권이야기 6. 노동권
  • 단대신문
  • 승인 2016.11.15 10:59
  • 호수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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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 보장은 운전기사의 기본권
▲ 출처: the guardian

네덜란드에 살면 편리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접근성입니다. 항공, 열차뿐만 아니라 버스를 이용해서 유럽 내 다른 국가들을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필자도 로테르담에서 버스를 타고 프랑스 릴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당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습니다.


출발 후 2시간 가량 달리던 버스가 벨기에 외곽의 한 호텔에 잠시 정차했습니다. 운전기사는 당연한 듯 일어나 짐을 챙겨 내렸고, 때마침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다른 운전기사가 올라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혹시 운전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내심 걱정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날 운전자를 교체했던 것은 유럽연합이 정한 ‘운행시간 제한 및 휴식시간 의무’ 지침에 따른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여객과 화물 운전기사는 최대 4시간 30분의 운행 후에 반드시 45분의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하며, 하루 최대 운행시간은 9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만약 운전기사가 9시간을 운행했다면 다음날 최소 11시간을 쉬어야만 다시 운전할 수 있습니다. 당시 버스 기사는 이미 9시간 가까이 운전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하루 휴식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 규정을 어길 시에는 운행 정지, 벌금 등의 조치가 취해지며 심할 경우 해당 사업자의 면허를 취소하기도 합니다.


유럽 정부들이 여객 및 화물 운전기사의 운행 시간을 철저하게 감독하는 하는 것은 대형교통사고를 예방하는 목적도 있지만, 운전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이유가 큽니다.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 (ICESCR)’ 제7항 ‘노동권’에 따르면 충분한 휴식·휴무 보장은 근로자의 기본권리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운전기사의 휴식 시간은 그들의 기본권리인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나라 버스운전기사들의 현실은 어떨까요? 아직 국내에는 여객이나 화물기사의 운행시간을 규제하는 법률이 없습니다. 물론 대형운송 회사들은 자체 근로규정이 있지만, 영세한 업체들의 경우엔 이마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잇따라 대형 전세 버스 관련한 사고들이 자주 발생하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우리나라 정부도 뒤늦게나마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대책’을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버스에 한하여 4시간 운전 후 30분 휴식을 부과하는 규정을 시행한다는 방침입니다. 문제는 인건비와 운송수입 하락을 염려하는 사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1일 총 운행시간 제한은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운전기사들의 권리보장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운행시간 제한 정책을 ‘국민의 안전을 위한 대책’이라고 했는데요, 운전기사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이란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운전기사의 휴식시간 보장은 그들의 편의를 위한 일종의 혜택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권리입니다. 운전자들의 노동권이 지켜질 때, 승객들의 안전 또한 보장될 수 있겠지요.


오규욱 인권칼럼니스트 kyuwook.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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