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탐구⑫ 친구

우정이란 이름으로 장유정 교양학부 교수l승인2016.11.15l수정2016.11.15 22:58l141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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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못된 만남>이 수록된 김건모 3집

친구란 ‘내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 “등 뒤로 불어오는 바람, 눈앞에 빛나는 태양, 옆에서 함께 가는 친구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리”란 말도 있다. 어쩌면 점점 각박하고 삭막해져 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이 삶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친구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대중가요 속에서도 ‘친구’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먼저 광복 이전에 발표된 대중가요에서는 ‘친구’보다 ‘동무’라는 어휘가 많이 사용됐다. 1928년에 개봉된 영화 ‘세 동무’와 같은 제목의 주제가였던 <세 동무>를 위시해 <동무의 추억>, <잘 있거라 동무들>, <동무의 무덤을 안고> 등이 발매됐다. 광복 이전까지 자주 사용됐던 ‘동무’라는 말은 광복 이후에는 ‘친구’라는 말도 대체됐다. 하지만 김용만의 <다정한 친구>와 남인수의 <고향 친구> 정도만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매우 적은 편이다.


대중가요에서 ‘친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실연당한 친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가사로 짐작되는 윤복희의 <친구야 친구>, 말다툼 후에 친구에게 화해의 말을 건네는 박상규의 <친구야 친구>, 실제 친구와의 우정을 가사로 만든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그리고 실제로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김민기의 <친구> 등이 떠오른다. 주로 동성 친구와의 우정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고, 이는 198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1981년에 남궁옥분이 노래한 <에헤라 친구야>는 친구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가사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정태춘이 작사하고 작곡한 이 노래는 사실, 1975년에 발표된 양병집의 음반에도 실려 있다. 다만, 후렴처럼 반복되는 “에헤라 친구야”는 공통적이어도 다른 부분은 조금 다르다. “멋들어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으로 유쾌하게 시작하는 이연실의 <목로주점>도 1980년대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조용필의 5집 음반(1983년) 속 <친구여>도 좋은 노랫말 등으로 해서 1996년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대중가요 속 친구는 그렇게 그저 좋은 존재였다. 내 꿈을 말하고 내가 가진 것이 없어도 웃으며 만날 수 있고, 말다툼해도 금방 풀어지는 그런 존재 말이다. 물론 2000년대 들어서서도 주화건(周華健)의 <붕우(朋友)>를 번안한 안재욱의 <친구> 같은 노래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친구를 둘러싼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단순히 동성 간의 친구가 아니라 이성 간의 친구 관계를 언급한 노래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조짐은 한마음이 1986년에 발표한 <친구라 하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노래에는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친구라 하네”라고 하는 이성(異性)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과의 우정을 다룬 노래들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와 공일오비의 <친구와 연인>은 1990년대 X세대의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며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약과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떠나기도 하고, 그저 친구로 남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하는 것은 둘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중가요에서 또 달라진 세태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자신의 애인을 빼앗긴 화자의 목소리로 이뤄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친구의 애인에게 마음을 품고 고민하는 화자의 말로 이뤄진 홍경민의 <흔들린 우정>을 들 수 있다. 어떤 노래가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당대인의 공감을 불러왔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두 노래 모두 상당한 인기를 얻었기에 1990년대 후반부터 세태가 또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친구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동성 간의 우정에서 점차 이성 간의 우정으로까지 그 범위 등이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 나이와 성별과 상관없이 서로 마음이 맞는다면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친구로서 해야 할 도리는 지킬 필요가 있다. 그 도리는 바로 신의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예의와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 어떤 40년 우정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무리 친구라도 그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한다. 공과 사를 지키지 않은 채, 친구라는 이유로 무조건 봐 준다면 그것은 진정한 친구가 아닐 게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가 진정하다고 볼 수도 없다. 때로는 인연으로 시작한 우정이 악연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거다. 때로 그 관계를 끊어야 할 때도 있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인생사 모든 일은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아니겠는가!


장유정 교양학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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