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낳는 혐오, 복잡한 실타래 풀 시발점
혐오를 낳는 혐오, 복잡한 실타래 풀 시발점
  • 이영선 기자
  • 승인 2016.11.15 22:59
  • 호수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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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 혼란스러운 줄 알았더니 지구 반대편 미국도 만만치 않다. 미국 대선에서 백인·남성우월주의 성향을 띄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많은 미국인이 반 트럼프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던 할리우드 스타들은 SNS를 통해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고,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거리로 나와 1인 시위를 펼쳤다. 힐러리 클린턴은 승복연설에서 “우리는 아직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이 유리천장을 깰 것이다”는 말을 남기며 패배의 쓴잔을 들었다.


본지 1407호 11면 ‘화요시선’ 코너에서는 유리천장을 주제로 다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라는 의미의 경제용어인데, 여성들이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조직 내에 관행과 문화처럼 굳어진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성들이 느끼는 그 장벽은 높고 단단하지만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다. “실력 탓 아니냐, 핑계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Feminism)’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다. 페미니즘적 인식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평등’과 ‘차이’의 대립이다. 평등을 요구할 것인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것인가. 완전한 평등이 불가하다면 기자는 후자를 택하겠다.


생물학적으로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환경미화원 채용과정에서 남녀 지원자에게 체력평가 기준을 같게 적용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업무 내용과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 여성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이 평등을 만들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자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어떤 방법으로 진정한 평등을 이뤄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 때면, 자웅동체(암수한몸)인 달팽이와 지렁이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한 커뮤니티에 익명의 여성이 그간 겪었던 성차별과 성범죄에 관한 게시글을 남겼다. 그 글은 이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누리꾼들은 서로를 비방했고, 글쓴이와 그 글에 공감한 여성들은 남성혐오자라는 뭇매를 맞았다. 지난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혐오라는 단어가 사건의 본질을 흐려놓았다. 남성혐오에 여성혐오가 맞서고 여성혐오에 남성혐오가 맞서는 이 세태가 기자는 너무나도 언짢다.


기자와 같은 청년이 많은 탓인지 페미니즘 열풍이 뜨겁다. 관련 서적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출간량도 급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78%, 예스24의 ‘여성·페미니즘’ 분야는 114.7% 증가했다. 주요 독자층은 20대다. 알면 알수록 불편하지만 언젠가 직면해야 할 사실들을 마주하겠다는 청년들의 몸부림으로 인식된다.


페미니즘과 관련해 가족,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기자의 어머니는 그때마다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런 이야기를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세상이 온 것도 참 신기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재에 이뤄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지독하게 싸우며 서로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이 과도기를 지혜롭게 넘긴다면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는 더 진보된 평등을 얘기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이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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