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아버님의 치매
<화경대> 아버님의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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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1.19 00:20
  • 호수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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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계신 아버님의 치매 증세 때문에 걱정이다. 지난 번 자식들이 모였을 때 아버님은 자식들을 몰라보시는 거였다. “누구신데 이렇게들 오셨나?” 막내 동생을 붙들고 아버님은 ‘누구시냐’고 물으시는 거였다. 여동생은 아버님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눈물을 쥐어짜며 이것저것 묻고, 앨범을 꺼내 보여주고 하였지만 아버님의 기억으로는 사진 속의 주인공을 읽어내지 못하셨다.

동네 사람들 생일은 물론 문중의 대소사부터 마을 전체 전답의 지번까지 속속들이 알고 챙기시던 왕년의 농촌지도자이신 아버님. 대문 밖에 누가 찾아왔다고 나가보라고 하셔서, 나가보면 바람만 휑하니 불더라고……. 왜 밥을 한 번도 안 주냐고 어린 아이처럼 보채시고, 어머님이 잠시 소홀한 틈에 무작정 정류장에 나가서 읍내에 나가는 버스를 타시려고 하는 것을 동네 사람이 말리면서 모시고 온 적도 여러 번이라고도 했다.

사전에 의하면 의학 용어로 ‘치매’란 두뇌기능 부전에서 오는 증후들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뇌기능 부전과 임상적 치매증후를 일으키는 질병들은 실제로 100여가지가 넘는단다. 1906년, 치매에 관해 Alzheimer인가 하는 박사가 처음 언급한 이래, 치매의 일반적 형태를 이 사람의 이름을 빌어 Alzheimer’s Disease(알츠하이머성 치매)라 부른다고 설명되어 있다. 치매는 기억력, 사고력, 그리고 판단력의 진행성 저하를 가져오며, 최근의 일이나 익숙한 과제들을 잊어버리게 한단다. 이러한 병의 진행은 개인과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르며, 뇌기능 부전은 결국 성격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고, 치매환자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버님은 평생 땅을 파고 일구고 때 되면 씨 뿌리고, 뿌린 만큼 거두며 살아오신 천생 농사꾼이시다. 자식들 가르치느라 젊어서 너무 심한 지게질에 시달리다 보니 허리는 휘어졌고, 그 영향인지 환갑을 채 넘기기 전에 디스크로 몇 년 고생하셨다. 세상에 죄 짓지 않고 주어진 운명대로 ‘땅에 엎드려 땅 냄새만 맡고’ 살아오신 분에게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통탄스럽기만 하다. 어머님은 곁에서 ‘늙으면 죽어야지.’ 하시면서 자식들의 걱정을 일축했지만 속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이제 자식들은 장성해서 제밥벌이를 하고 살지만 아버님은 옛 기억조차 하지 못하신다.

형제들은 아버님을 가운데 두고 눈물만 찔찔 짜다가 돌아왔다. 순번이라도 정해 시골에 자주 오자는 얘기를 하면서……. 사위도 며느리도, 그리고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시고 죄 없는 분이 죄 많은 자식들 앞에서 이런저런 채근을 받는 것이 낯설었는지 고개를 자꾸 다른 데로 돌리셨다. 여동생은 숨죽여 눈물만 흘리고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속병은 아니라서 식사는 웬만큼 하시는 게 다행이라고 한숨을 토해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알츠하이머형 치매환자의 뇌척수액에서 정상인보다 높은 농도의 타우단백질과 낮은 농도의 베타아밀로이드-42단백질이 검출되어 치매병 진단에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세상에 원인을 속속들이 밝혀낼 수 없는 게 한두 가지랴. 아버님이 이렇게 되신 것은 평소 제대로 연락도 않는 자식들의 불효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약주나 한 잔 하셔야 옛날 고생하신 얘기를 하시던 착하디착하신 아버님만은 늘 그냥 그렇게 건강하게 사실 거라고 믿었던 자식들의 불효 때문에……. 아버님 곁에서 평생동안 험한 농삿일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제는 병수발로 바깥 출입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어머님께 또 더 큰 죄를 짓게 되었다. 떠나는 자식들의 자동차 너머로 아버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어머님은 곁에 서 계시고……. 자식들이야 훌쩍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버린다. 나도 그 자동차에 몸을 싣고 울음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유인식<수도여고·교사>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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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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