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굳이 불편해야 하는 이유

설태인 기자l승인2016.12.06l142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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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한 지인이 물었다. 당신 혹시 ‘프로불편러’냐고. 농담조로 얘기하던 그의 말에 잠자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자리에 있던 네댓명의 친구들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의 프로불편러는 ‘쓸데없이 트집 잡기에 혈안이 된 사람’을 비꼬는 신조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불편러라는 말을 농담처럼 사용하는 그 상황마저 불편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기자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프로불편러가 맞다.

사람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프로불편러를 자처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곳곳에서 느껴지는 차별과 혐오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친놈’, ‘게이 같아’, ‘여배우’, ‘학생치고 대견하네’….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언어는 장애인과 성소수자, 여성과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사회적 약자를 타자화하거나 차별, 혐오하는 개인의 무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본지 1419호에선 우리 대학 장애 학생과 도우미의 하루를 동행하는 르포를 취재했다. 장애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취재원들을 만나면서 가장 심사숙고했던 것도 언어였다. 나의 언어가 당사자에게 차별이나 혐오로 느껴지지 않도록 세심히 고른 단어와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는 과정은 여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선 다르다. 우리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담긴 언어를 쉽게 내뱉는다. 당장 내 눈앞에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당사자도 있으며, 사회적 약자라고 느껴지지 않는 당사자도 있다. 이들에 대한 수많은 비하 발언이 사소한 농담이 되는 순간 차별과 혐오는 재생산된다.

혹자는 ‘병신’이라는 단어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 주고받는 장난일 뿐이고, 나라를 망쳐버린 대통령을 ‘미스 박’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대수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자는 장애인을 우스운 사람에 비유했고, 후자는 대통령 개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비판이 아닌 결혼 여부에 따라 여성을 구분해 비난했다는 점에서 차별을 전제한 언어다. ‘나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다’라는 합리화를 시전한다고 해도, 사실 그런 의도로 말한 게 맞다. 의도가 어떻든 그 단어를 내뱉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적 관념을 반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차별과 혐오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러나 사회는 차별을 전제한 언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뭘 또 그렇게까지 하냐’며 프로불편러라는 낙인을 찍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불공정을 개인의 불편함과 예민함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는 상황을 묵인하고, 그들을 외면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부끄러운 변명일 뿐이다.

문득 지난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리던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혐오와 차별이 없는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한 프로시위꾼의 말이.


설태인 기자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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