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그래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 단대신문l승인2017.03.14l수정2017.03.28 11:06l1422호 14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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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에리히 프롬
책이름     사랑의 기술
출판사     문예출판사
출판일     2006.10.20.
페이지     p.216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는 크레타 섬의 미로에 갇힌다. 미로에서 자칫 길을 잃다간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였지만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미궁에서 빠져나와 아테나의 왕이자 영웅이 되었다. 이 모든 건 크레타의 왕녀 아리아드네가 그에게 건네준 ‘실’ 덕분이었다. 
 

원죄와 같은 불안에서 우릴 해방시켜줄 하나의 ‘실’이 사랑이라 하면 너무 진부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분리 불안을 극복하는 법으로 사랑을 기술처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현대인들은 사랑은 단순히 우연한 기회에 찾아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 받아들인다. 저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들이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추측하는 이유를 정리했다.

첫째로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문제라 생각하지 ‘사랑을 하는’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매력적으로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만 조금 더 사랑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대부분 사랑을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파악한다. 자유연애가 보편화된 것은 서양에서도 겨우 몇 세기의 일이었다. 사랑의 자유 개념은 능력 문제와 대립한다. 끝으로 현대인들은 최초의 사랑을 겪는 상태와 사랑을 지속하는 상태를 착각한다. 사랑을 시작할 때 타인의 벽을 허무는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놀랍고 유쾌한 경험이다. 그러나 이는 사랑을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다. 사랑을 지속하는 상태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다.

이와 같이 현대인들에게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은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시작하는 법만 안다.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이 사랑의 전반을 대체해버렸다. 에리히 프롬의 주장을 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사랑은 시작하는 과정과 유지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기술이란 바로 이런 사랑의 총체적인 요소의 합을 연마하는 길이다.

“성애는, 만일 이것이 사랑이라면, 한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존재의 본질로부터 사랑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그의, 또는 그녀의 존재의 본질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전제를.”(p.80)  

이론과 실천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배우는데 필수 요소가 있다. 바로 사랑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돼야 한다. 현대인들은 돈, 권력, 명예가 궁극적인 관심사가 된다.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돈이나 권력이라 착각한다. 아무리 사랑을 나눠도 궁극적인 인생의 목적이 사랑이 아니라면 결국 결말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을 배워야 한다. 악기를 배울 때 굳은살이 생기고, 같은 악보를 지루하게 치는 것처럼 사랑을 배워야 한다. 진부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너에게로 가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상처투성이일지라도. 
 
박준수(무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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