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인 캠퍼스 4. <뤼겐의 백악암>

존재의 심연을 응시하는 내적 풍경 단대신문l승인2017.03.28l수정2017.03.28 10:47l142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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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뤼겐의 백악암>, 1818년, 캔버스에 유화, 90.5×71㎝

필자가 우리나라에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를 처음으로 소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초였다. 그때만 해도 미술인들조차 프리드리히를 아는 이가 거의 없을 때였다. 같은 해에 월간잡지에 프리드리히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논문을 실었고, 이 논문은 필자의 첫 저서인 『세계관으로서의 미술론』에 여러 장의 작품사진과 함께 다시 소개됐다.

낭만주의 최대 화가인 프리드리히는 죽은 뒤 잊혀진 화가였다가 20세기 중엽에 새롭게 평가돼 위대한 낭만주의 풍경화가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미학자 ‘제들마이어’는 프리드리히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라고 했다. 

■  혼돈,영원,신비에 대한 화가의 동경
프리드리히의 회화가 지닌 새로움과 위대성은 내면적 주제 설정과 그것을 표출하는 형이상학적 상상력에 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심오한 시선이 운명적인 우수에 둘러싸여 빛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독일 낭만주의 회화의 오묘함에 깊게 경탄했던 것은 바로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였던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타고난 고독함과 우울함을 지닌 화가였다. 이 고독한 천재의 우울함은 그림을 감싸고 도는 정서적 기조가 돼있다.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도 시대적 정신상황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반영하는 법이다. 천재적인 화가가 그 가장 깊은 곳에서 느끼는 내적 우수는 한 시대의 정신상황 속에 밀려드는 깊은 변화와 위기를 예고하는 경우가 많다. 프리드리히가 느낀 내적 우수도 바로 시대의 저변에 서서히 밀려들고 있었던 낭만주의적 정신상황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낭만주의는 일종의 반종교적 정신상황이다. 이제 세계와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신에 의해 질서 잡힌 안정된 것일 수 없게 됐으며, 혼돈과 영원과 신비에 대한 동경이 우주에 있어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함께 낭만주의 천재들의 정신을 지배하게 됐다. 그들은 존재의 밑바닥에 있는 무한한 혼돈과 어둠을 직시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들에게 불안과 허무를 주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해주기도 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에 감도는 우수는 이와 같은 낭만주의 정신상황의 반영인 것이다. 

■  의도적 배치를 통해 드러난 낭만주의
<뤼겐의 백악암>은 그가 44세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을 지인들에게만 보여주고 공개적으로는 전시하지 않길 바랐다고 한다. 이 작품 속에 그려진 풍경은 실제 그대로가 아니다. 그는 자연풍경의 단편들을 그의 내적의도에 따라 배치하고 변형시켜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작품을 분석해 보면 먼저 세 명의 인물과 나무에 의해 구성된 근경(近景)이 있고, 그 뒤로 석회암벽의 중경(中景)이, 그리고 끝없는 바다가 원경(遠景)으로 펼쳐진다. 근경의 풀밭과 나무는 화면을 하트형태로 감싸면서 전체의 구도에 단단한 통일감을 주고 있는데, 그 속에 배치된 세 명의 인물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조심스레 앉아있는 붉은 옷의 여인은 협곡의 심연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고, 푸른 옷의 남자는 그 깊은 협곡에 현기증을 느껴 앞으로 쓰러진 채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 모습은 존재의 깊은 곳에 출렁거리는 무한한 어둠을 보고 불안에  젖는 낭만주의 정신의 한 상징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오른편 나무둥치에 기대 초연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프리드리히의 내면에 깃든 영원에 대한 동경을 암시하고 있다. 중경의 뾰족하게 솟아오른 바위는 시선을 협곡에 집중 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중경 전체를 통일적으로 묶어주고 있으며, 양옆의 암벽에 의해 바다는 그 심연 전체가 하늘로 치솟을 듯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존재의 무한한 심연이 더 이상 가려져 있지 않고 가까이에서 생생히 느껴지는 것, 이것 역시 낭만주의 정조의 한 현상인 것이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근경의 다소 명랑한 정경과, 중경과 원경의 무한한 공간이 자아내는 쓸쓸함과 우수가 상호 조응하면서 심리적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상으로서의 존재세계와 그 영원한 심연의 긴장관계가 낳는 신비에 찬 불안한 정조가 감돈다. <뤼겐의 백악암>은 낭만주의 회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임두빈(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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