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대선 3. 외교 문제 - 수요집회·사드배치철회운동
장미대선 3. 외교 문제 - 수요집회·사드배치철회운동
  • 남성현·박정은 기자
  • 승인 2017.03.28 11:59
  • 호수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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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 반영 못한 역사와 안보의 현장

Prologue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정국이 조기 대선 체제로 접어들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확정되는 가운데, 각계에서는 위안부 협상과 THAAD 배치를 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터넷 뉴스와 SNS는 우리에게 상당히 표면적인 정보만을 제공하기에, 문제의 입체적 접근에 제약이 존재한다. 이에 기자는 재점검을 위해 보다 심층적이고 경험적인 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밀착 취재를 시도했다.


이번 취재는 수요집회 현장의 분위기를, 성주 주민들이 느끼는 감정과 현실적 고충들을 주안점에 두었다. 이번 르포를 통해 현 외교문제를 보다 깊고 현장감 있게 느껴보기를 바란다.

 

▲ 제 127차 수요집회 참가자들이 평화로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 노란색으로 물들여진 평화로
3월 1일 오전 11시 30분. 매주 수요일 12시 평화로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란 물결로 가득 찬다. 지난 1일 집회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평화로를 찾은 기자의 발걸음도 정오에 맞춰 점차 빨라진다. 횡단보도를 건너 모퉁이를 돌자 벌써부터 거리에 노란빛이 만연하다.


머리에는 노란 나비를, 손에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평화나비 네트워크 청년들.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온 거리를 노랗게 물들인 이곳 평화로는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이미 만원이다. 길 한쪽에는 역사의 현장을 담으려는 수많은 취재진이 저마다 촬영 준비에 분주하다.


정오가 되자 위안부 할머니들이 등장하고 평화로는 환호와 박수갈채로 가득하다. “역사 은폐! 2015! 한일합의! 폐기하라!” “일본 정부는! 할머니들께! 공식! 사죄하라!” 사람들의 힘찬 구호와 함께 제1272차 수요집회가 시작된다.

 

♦ 발 벗고 나선 노란 나비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민중가요 ‘바위처럼'의 흥겨운 노래에 맞춰 평화나비 네트워크 청년들이 준비한 율동이 집회의 시작을 알린다. 비록 어설프고 서툰 몸짓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떠나가질 않는다.


청년들의 유쾌한 율동이 끝나고 평화나비 네트워크 서울공동대표 문교창 씨와 문수빈 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98년 전 오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분노한 민중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던 날,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이 왔을까요?” 문 대표는 26년간 이어진 할머니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원망을 내비쳤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요집회는 무려 9,185일. 처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 외교적 무능의 결과
한국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의 간략한 경과보고 이후 자유발언대가 이어졌다. 적게는 8살부터 많게는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자유발언이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위안부 할머니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과거에 나라가 힘이 없어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억지로 끌려갔다가 목숨만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결코 위로금 받으려고 이태까지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우리를 무시했으면, 그 돈을 받아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할매들에게 돈 몇 푼 주고 나머지로 다른 사업을 했다네요! 세상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역사를 팔아먹는 거 봤습니까?” 김복동(92) 할머니의 마이크를 잡은 손이 분노에 떨린다.

▲ 이용수 할머니가 집회 참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소녀상이 무서우면!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해야지요! 왜 소녀상을 철거하라 그래요?” 이어 이용수(90) 할머니의 발언이 이어졌다. “우리가 우리나라에 소녀상을 세우는데! 건방지게 자기들이 치우라고 해요? 못합니다!” 격해진 감정 탓에 떨리는 한 맺힌 목소리가 평화로에 울려 퍼진다. “저 나이 안 많습니다! 지금 90인데,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여러분, 같이 활동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흔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정정하신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우리 세대의 행태에 부끄러운 마음 뿐이다.

 

♦ THAAD? NO THANKS!
수요집회 취재를 다녀온 지 한 달 남짓, 중국의 과잉 보복 논란으로 불거진 ‘THAAD’ 배치를 취재하기 위해 성주로 출발했다.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성주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사드배치 결사반대’ 피켓. 지난달 27일, 롯데그룹이 자사 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하기로 하면서 성주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증폭됐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도로 곳곳에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곧바로 시내버스에 오른 후 30분, 성주군 초전면에 도착했다. 골프장 근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곳 초전면에서 운행하는 개인택시가 유일한 수단이다. 비가 내려 창백해진 초전면 거리는 가게와 주택, 나무 등등 여기저기에 가득 붙여진 대자보와 현수막 때문인지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성주 롯데 CC골프장 인근에서 24시간 농성 법회를 진행하고 있는 원불교 관계자들

연신 현수막을 향해 셔터를 누르자 누군가가 다가온다. “싸드 취재하러 왔능교?” 카메라를 든 기자를 알아본 초전면 주민이다. 그는 잠시 현수막을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 잘 써 주이소….” 골프장 가는 길을 친절히 설명해준 그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사라졌다.

 

♦ 땅도, 권리도 빼앗긴 성주 군민들
골프장으로 가는 길. 택시기사는 사드 배치로 인해 골프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여기서 골프장까지 가는데 1만7,000원이 나와요. 일주일에 세 번 간다 치면 왕복으로 쳐서 십만 원 정도 되는데 우리에겐 큰돈이잖아. 그게 없어져뿟다고….” 하지만 이미 배치 중인 사드를 어찌할 수 있겠냐며 한숨을 내쉰다. “내가 반대한다고 될 일도 아이고, 내가 들어오라 카면 들어오고 들지 마라카면 안 들어오겠나.” 운전대를 잡은 택시기사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골프장 인근 소성리 회관. 곳곳에 설치된 컨테이너와 천막이 눈에 띈다. 이곳 ‘소성리 종합상황실’은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다각적으로 지원하는 곳으로, 성주 군민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뭉치는데 일조한다.


조심스럽게 컨테이너로 들어가자 관계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취재를 도와주겠다며 회관으로 안내한 한 관계자는 사드배치 반대의 근거를 크게 ‘군사적 효용성 문제’와 ‘정식 절차의 부재’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사드 배치에 대한 합의 문서와 정식 절차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며 목소리에 힘을 준다. 이어 “더욱 많은 사람이 사드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한다. 


설명이 끝나고, 관계자분이 연결해주신 24시간 농성 원불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자리를 옮겼다. 

5분간 2차선 도로를 따라 오르던 중, 하나 둘 경찰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형광 우의를 입은 경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괜스레 움츠러드는 몸을 추스르며 발길을 재촉하던 중 두 갈림길 분기점에 위치한 원불교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 거리 곳곳에 내걸린 사드배치 반대 현수막

한창 법회가 진행 중인 천막 안. 근처에는 많은 경찰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목탁 소리와 함께 긴장감만이 흐른다. 사드 부지로 넘어간 골프장에는 원불교가 신성하게 여기며 순례를 하는 ‘구도길’이 있는데, 사드 배치로 인해 군사보호구역이라는 명목 하에 경찰이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합상황실 강형욱 교무는 “종교의 자유는 고사하고 주민들의 통행의 자유조차 군이 침해하고 있다”며 “이 길 너머에 본인 소유의 땅이 있어도 마음대로 출입하지 못하고 경찰 수색 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혹시 몰라 강 교무와 함께 길을 통과하려 했지만 5~6명의 경찰이 접근해 진입을 저지당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길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사람들. 취재 내내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체 누구를 위한 사드 인가?’

▲ 비 내리는 와중에도 성주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참가자들

♦ 광화문의 촛불은 끝났지만….
다시 찾은 성주군청. 매일 오후 8시, 사드배치 철회를 촉구하는 ‘성주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이곳은 성주군 농민들이 자리를 채운다. 고된 하루의 끝에 향한 곳이지만 결의에 찬 눈빛이 그들의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사드에 관심이 없었다는 A씨는 “힘들고 지쳐도 꼬박꼬박 나오는 어머니들이 있기에 안 나올 수가 없었다”며 “남녀노소 한마음, 한뜻으로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Epilogue
수요집회와 사드배치철회운동. 현장에서 들은 그들의 목소리는 같은 것을 바라고 있었다. 바로 '소통'이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미래의 대통령이 될 장미대선의 후보자들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일방적인 정책결정을 내릴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정을 해달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장미대선. 국민 모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만인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을 펴는 성숙한 정부가 들어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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