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
황혼육아
  • 양민석 기자
  • 승인 2017.04.11 11:42
  • 호수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요시선 16 : 은퇴 이후의 노동, 황혼육아
▲ 출처 : 헬스조선

● [View 1] 조부모
내 딸과 사위는 맞벌이부부다. 딸과 사위가 회식이나 야근이 있는 날이면, 손주들이 부모를 기다리다가 지쳐 잠들었을 때 겨우 쉴 수 있다. 이렇게 내 귀한 손주들을 돌본 지 5년이 됐다. 큰 손주는 초등학생이 됐고, 작은 손주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아이들이 한 뼘 한 뼘 자라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나와 내 남편도 이제 칠순이 넘다 보니, 한 해가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벅차다.


처음에는 그들의 상황을 너그럽게 이해했지만 이제 더는 참지 못하겠다. 집 안 곳곳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학원 숙제를 도와주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은퇴 이후의 편안한 노후 생활을 꿈꿔왔지만, 그 꿈은 이미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부모에게 효도로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고생이나 시키는 꼴이라니… 내일 내 딸과 사위를 불러 대화를 할 참이다. 아이들은 부모인 너희가 직접 키우라고 말할 것이다.

 

● [View 2] 맞벌이 부모
또 야근이 있는 날이다. 요즘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 최근 들어 유난히 야근과 회식이 잦다. 결국 오늘도 아이를 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게 됐다. 어제 부모님과 양육 문제 때문에 다퉜는데, 오늘 우리 부부가 죄송하다고 하면 과연 말을 들어주실까. 걱정이 앞선다.


마음 같아서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직접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육아휴직 기간 1년은 이미 다 써버렸다. 또,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려 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우리 동네에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보육시설이 없을뿐더러 이미 괜찮은 보육시설은 자리가 꽉 찼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시대 속에서 아이를 키우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앞으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면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에쓰-오일의 TV광고 ‘엄마웃음도 채우세요’ 中

● [Report] 황혼육아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맞벌이 510만 가구 중 51%가 맞벌이하는 자녀 대신 조부모가 손주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자식을 다 키우고 은퇴한 뒤에도 다시 손주를 키워야만 하는 황혼 육아 시대가 찾아왔다. 막대한 양육·교육비 부담에다가 아이를 믿고 맡길 마땅한 보육시설이 없어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을 조부모의 손에 맡기고 있다.


실제로 2015년 육아정책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부모 500명 중 76%가 ‘자녀 부탁에 의한 비자발적 양육’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2015년 라이프스타일 잡지 헤이데이의 설문조사에서 50대 이상의 조부모 2,000명 중 53%가 맞벌이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볼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주병’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손주병은 손주를 양육하는 조부모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최근에 척추, 손목 등에 고통을 호소하며 정형외과를 찾아오는 조부모들의 증가, 조부모들이 온종일 아이를 돌보느라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느끼는 정신적인 소외감에서 오는 노인 우울증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황혼육아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불거지면서, 정부·지자체는 아이 돌봄서비스, 조부모 육아교실 등 조부모 육아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그나마 공급된 육아 지원 서비스조차도 일부 지역의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한참 못 미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가정에서 따뜻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육아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양민석 기자
양민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yangsongsoup@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