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춘을 필름에 담다

영화감독 이지원(35) 씨 양민석 기자l승인2017.04.11l수정2017.04.16 21:58l142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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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위안부 강제동원 역사의 진실을 알린 독립영화 <귀향>은 영화 제작비를 투자받지 못해 완성까지 무려 14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처럼 한국에서 독립영화의 입지는 열악하다. 독립영화는 국내 대형 배급사가 점령한 영화 시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품성이 뛰어난 독립영화가 있더라도 상영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진흙 같은 영화계에서 연꽃처럼 아름다운 청춘 영화를 피워내는 영화감독 이지원(35) 씨가 있다.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깊게 들여 보듯 청춘을 진실하게 그려낸 이 씨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순수한 열정이 숨 쉬는 독립영화 제작 현장의 중심에서 최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 씨를 지난달 7일 서울 중구 수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수상경력

 

“방황했던 내 20대 인생은 청춘 영화의 밑거름”

 

▶ 독립영화의 어떤 매력에 빠졌나.

상업적인 목적의 영화가 아니다 보니 창작의 목표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꼭 톱스타가 아니더라도 감독이 원하는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캐스팅해서 영화를 찍는 등 자율적이다. 한편 상업영화는 외부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된다. 여러 이해관계가 개입되다 보니 창작하는데 일정 부분의 조율이 필요하다.

 

▲ <여름밤> 포스터

▶ 본인에게 가장 의미가 깊은 작품을 하나 고르자면.

대학원 졸업 작품 <여름밤>(2015)이다. 취업준비생과 고3, 세대는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소녀의 따뜻한 관계를 그려낸 이야기다. 어찌 보면 두 세대는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정해놓은 가파른 시스템 진입장벽에 놓여있는 힘든 시기이다. 고등학교 3학년 ‘민정’은 자신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변경되자 취업준비생이자 과외 선생님인 ‘소영’에게 과외 시간을 바꿔 달라는 부탁을 한다. 민정은 자신이 과외비를 내는 만큼 소영이 자신의 시간에 맞춰야하는 을의 처지에 있다고 주장한다. 소영은 고민 끝에 아직 어린 민정에게 양보해 과외 시간을 바꿔준다. 그렇게 둘은 여름밤의 거리를 같이 걷는다.

 

▶ 여름밤은 어떤 시간인가.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더라도 서로를 의지하고 돕는다면 ‘여름밤’이라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서 잠시 벗어나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게 하는 단란한 시간처럼 말이다. 취업준비생과 고3,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삭막하고 어두운 시기이지만, 서로의 배려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시간이다.

 

▲ <여름밤> 장면

▶ 주로 청춘을 주제로 쓴 작품을 연출했다고 들었다.

<여름밤> 이전에도 청춘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세대 앞에 놓인 불확실한 미래나 그들이 느끼는 불안을 주제로 한 작품을 연출했다. 취업에 관한 불안을 표현한 <푸른 사막>(2011),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막연한 희망과 걱정 사이의 불안을 이야기한 <자리>(2012)가 있다. 나 또한 20대에는 불안한 현실 속에 꿈을 가지지 못했던 대학생이었고, 그런 경험은 청춘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 늦게 꾸게 된 영화감독의 꿈. 어떻게 이뤘는가.

2004년에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활에서 영화에 관한 열정이 가득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느냐는 고민도 늘 있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내가 가진 능력에 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졸업 작품인 <푸른 사막>이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고 관심을 끌면서 다음에 한 번 더 영화를 찍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그때의 자신감은 결국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것을 가능케 했다.

 

▲ <여름밤> 제작 현장

▶ 현장에서 행복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작은 규모의 영화 제작 현장이지만 스태프들에게 월급을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돈보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뭉쳐 결국 영화를 완성해낸다. 그럴 때마다 스태프들에게 감독으로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또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줄 때 촬영 모니터를 보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

 

▶ 본인만의 특별한 시나리오 작업 스타일이 있다고 들었다.

무턱대고 시나리오를 쓰기보다는 이미지를 먼저 생각한다. 문득 떠오른 장면들을 기억했다가 시나리오 작업 때 조합해 본다. 장면들을 엮어서 시나리오를 써 내려 가는 것이다. 이미지의 배경이 되는 장소 또한 중요하다. 실제적인 장소뿐만 아니라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감을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 좋아하는 감독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벨기에 감독 ‘다르덴 형제’의 작품을 좋아한다. 이들 사이에는 사실주의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을 읽는 그대로 반영하는 스타일에서 감독 특유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깊은 통찰이 묻어난다. 쾌감을 선사하는 영웅 영화도 좋아하지만, 메시지의 울림을 주고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실주의 영화를 좋아한다.

 

▲ <여름밤> 제작 현장

▶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사람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려주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 관객에게 삶의 즐거움을 주는 재밌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그 안에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싶다. 창작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중점을 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색. 하나의 색깔로 정의할 수 없어 어떤 색깔도 아닌 투명함을 생각했다. 나는 어느 무리 안에서 유별나기보단 평범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무난한 성격이다.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투명한 유리창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접할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오늘날의 청춘은 내가 20대일 때의 청춘보다 치열해졌다.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서로를 이어주는 연대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선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앞만 보고 걸을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잠시 발길을 멈춰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아야한다. 함께 하는 가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밝혀둡니다. 

지면에 게재됐던 기사와 실제 인터뷰 내용 사이 다른 부분이 있어 인터넷 기사에 수정 후 게제한 점을 밝혀둡니다.


양민석 기자  yangsongsoup@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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