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인권이야기 14. 차별금지법
우리가 몰랐던 인권이야기 14. 차별금지법
  • 단대신문
  • 승인 2017.05.16 10:12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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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 출처: totalog.net

 

얼마 전 김해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딸과 사위를 위해 장모님은 아침 일찍 재래시장에서 우럭을 사 오셨습니다. 서울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큼지막한 우럭 한 마리에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웠습니다. 다시 밥을 가득 채워 주시며 장모님은 “근데 이제 재래시장에 못 가겠어. 온통 검은 애들만 있어서 좀 무서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목이 막혔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김해에는 외국인 근로자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고층 아파트 단지, 쇼핑몰 등이 몰린 신시가지로 떠나고 그 빈자리 옛 주택가에는 동남아시아, 중국,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근로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시장에 오는 게 왜 불편하세요? 혹시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섭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차별이에요, 어머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모처럼 함께 모인 식사자리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득, 필자가 영국, 네덜란드에서 지난 7년 동안 살면서 경험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달리던 차에서 날아온 요구르트에 바지를 버린 일, 음료수 캔에 뒤통수를 맞을 뻔한 일, 동네 아이들에게 ‘니하오, 니하오’라고 불릴 때마다 얼굴을 붉혔던 일 등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겪은 불쾌한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우리나라에 있는 2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을까,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 인종차별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 혹은 신체적 고통까지 받는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종, 출신국가 피부색,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 헌법에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돼 있지만, 이 조항만으론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별적 유형들을 설명하고 이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특히 차별을 당한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구제하는 절차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미 미국,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여러 국가는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일부 극심한 반대로 번번이 국회에서 가로막혀 왔습니다. 특히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성’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달 대선후보 TV 토론 중 ‘동성애를 반대하는가?’라는 홍준표 후보의 질문에 당시 문재인 후보는 ‘네,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해 논란이 됐습니다. 인터넷과 SNS에 논란이 커지자 문 후보는 ‘군대 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동성애는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 라고 해명했지만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많은 분이 차별금지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국가인권회법이 금지하는 19가지 차별 사유에 ‘성적지향성’이 이미 포함됐다는 사실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차별을 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닙니다.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목적은 ‘차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차별 금지법이 제정된 뒤 일반들이 장애인에 대해 인식이 크게 개선된 것, 남녀고용평등법이 생기고 직장 내 성차별과 성희롱 등 다양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즉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출신국가,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괴롭힘이 단순한 인격권침해가 아니라 해당 집단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포함된 차별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상대에게 신체적이나 물리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수치심과 모욕감, 두려움을 주는 행동도 차별이란 것을 말이죠. 이러한 차별은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눈앞에 직접적인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차별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배제됐거나, 많은 경우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규욱 인권칼럼니스트 kyuwook.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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