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존재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 단대신문
  • 승인 2017.05.16 10:43
  • 호수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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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메타포

 

 

 

저  자     정호승
책이름     슬픔이 기쁨에게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14. 12. 05
페이지     p.144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따라서 우린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오롯이 받아내야 한다. 수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물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강한 몸부림이 되레 물속으로 그들을 끌어당긴다. 물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때 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에서는 이런 세상 속에 던져진 인간이 어떻게 관계적인 측면에서 살아나가야 할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인간이 세상과 관계하는 방법은 균형을 맞추는 법이라 말하고 있다. 슬픔이 없이 기쁨만 있는 삶은 없다. 모든 것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시인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슬픔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균형은 단순히 양적 균형이 아니다. 시 ‘눈사람’의 구절처럼 슬픔 많은 사람끼리 살아가다 보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아름다워진다. 그렇기에 단순히 슬픔이 쌓인 만큼 기쁨이 돌아온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유아적이다.


다름이 아니라 질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 슬픔을 가진 이들끼리 연대해야 한다. 한 송이 눈이 세상을 덮지 못하듯 슬픔이 모여 세상을 하얗게 변하리라는 시인의 관조 속에서 시인이 바라는 세상을 그릴 수 있다.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凍死者)가 얼어 죽을 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실존이 본질에 앞서듯 그의 시에선 슬픔의 연대가 인간의 실존을 대변한다. 시인이 이 시집에서 그렇게 사용하던 ‘눈’과 ‘눈사람’이라는 시어는 어느 순간 하나의 눈물로 변한다. 슬픔에서 녹여낸 눈물은 단순히 기쁨이 아니라 희망이 된다. 봄이 온다. 제피로스가 따스하게 우릴 껴안지만 슬픔의 메타포는 쌓인다.

 


박준수(무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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