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살아남은 우리에게 남은 과제

이상은 기자l승인2017.05.23l142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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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7일 새벽 1시경, 서울 강남의 한 노래방 건물의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20대 여성이 맞아 세상을 떠났다. 1주기가 된 지난 17일 강남역은 추모의 물결로 다시 한번 물들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000명(경찰 추산 800명)이 참여했는데, 여성 참가자 사이에서 남성 참가자도 드물게 모습을 보였다.


특별히 여성, 남성 참가자라고 명시한 것은 이번 사건이 ‘묻지 마 범죄’보다 ‘여성 혐오 범죄’라는 타이틀이 더 부각됐기 때문이다. 당시 피의자를 조사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여성뿐만 아니라 타인 전반에 걸쳐서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 혐오 범죄라고 단정 짓기엔 다소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인 동기에 대한 갑론을박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여혐 논란에는 언론사도 한몫했다. 물론 피의자가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하는 진술에서 본격적으로 발전된 논란이나, 사건 보도 초기에 일부 언론은 강남역 인근을 유흥가라고 표현해 마치 피해자를 부정적으로 비췄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목사를 꿈꾸던 신학생’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등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보도 행태가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기자는 신문사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보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이후 사건 장소인 남녀 공용화장실은 성별로 분리되고 여성 안심 화장실 팻말과 비상벨까지 설치됐지만 아직 안심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느낀 탓이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느끼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여성의 52%는 직장에서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으며(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공중화장실 범죄 총 1,795건 중 성범죄의 비율은 46.5%(경찰청)이다. 하지만 미약한 변화이긴 하나 환경도, 우리의 인식도 차츰 개선되는 모습이 보인다. ‘두려움이 곧 용기’라는 이번 추모행사의 구호처럼 침묵했던 사회는 바뀌고 있다. 핵심은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동시에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 즉 실질적인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적 혐오 논란은 진보된 성 평등 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필수과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혐, 남혐 등의 미시적인 논란에만 집중해 본질을 흐리기보다는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이러한 범죄에 대해 사회구조적 제도 성립을 촉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과도기적인 시기, ‘이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는 성 평등 사회 수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페미니즘 논의의 촉발점이 된 강남역 살인사건이 단순히 한 여성의 죽음으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이상은 기자  3215318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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