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체험·데스 카페 - 힐다잉, 인생의 ‘마침표’ 아닌 삶의 가치와 행복을 위한 ‘쉼표’
임종체험·데스 카페 - 힐다잉, 인생의 ‘마침표’ 아닌 삶의 가치와 행복을 위한 ‘쉼표’
  • 전경환·이상윤 기자
  • 승인 2017.05.23 17:23
  • 호수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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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순간이 한 번도 없으세요?” 과거와 현재, 미래에서 고민걱정 없는 행복한 삶만을 누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사람이 가정, 학업, 취업, 대인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러한 스트레스가 극심할 경우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12년 연속 자살률 1위, 국가 최저 수준인 행복지수(58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평균 38명의 자살, 연간 약 1만 5,000명의 사망자 중 20대와 30대는 약 3,800명에 육박하며 이는 이 나이때의 사망원인 중 1위에 해당한다.
 

이렇듯 안타까운 상황에서 죽음을 결심한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죽음에 대한 간접경험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보며 쉬어갈 시간을 제공하는 ‘힐-다잉(Heal-Dying)’체험과 죽음에 대한 토론과 새로운 인식을 통해 삶의 목표와 의미를 확실하게 바로잡는 ‘데스 카페’가 등장한 것. 죽음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좇아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에서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해 봤다.

죽을 준비가 되셨나요?
센터에 들어서자 귀신에 홀린 듯이 한 곳을 응시하며 몰려있는 많은 체험자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서자 사람들의 영정사진에 온몸이 쭈뼛거린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정신을 놓을 찰나에 관계자가 기자의 곁에 다가와 말을 건넨다. “죽을 준비가 되셨나요?” 한 마디 말에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며 관계자의 안내를 따라 발걸음을 뗀다.
 

도착한 곳은 영정사진 촬영소. 영정사진이란 말에 괜스레 찝찝함이 밀려오는 한편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마땅한 사진 한 장 없겠다는 생각에 애써 진중한 표정을 짓는다. 보통 조명과 카메라 뒤에 자리한 사진사는 밝게 웃으라며 스마일이나 김치를 언급, 포즈를 취하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이곳은 싸늘한 표정의 사진사가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일절의 소통 없이 셔터를 누른다.

갈등의 연속인 ‘삶’속에서 새롭게 시작하기
촬영을 마치고 찾아온 순서는 임종체험 강의. 정용문(47) 효원힐링센터장은 강의실에서 죽음과 삶, 그리고 임종체험이 갖는 의미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힐-다잉' 체험이라 일컫는 임종체험은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며 참여자들에게 찾아온 이유를 묻는다. “사기를 당해 집도 가족도 잃었어요”, “암 투병 이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습니다”, “좋은 대학을 강요하는 부모의 등쌀에 무거워진 어깨를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많아요”…. 정 센터장의 질문과 함께 속속 드러나는 참여자의 고민들… 가슴을 후벼 파낸 저마다의 이야기는 공감을 자아내며 강의실은 눈물바다가 된다.
 

뜨거운 눈물을 뒤로하고 정 센터장이 참여자들에게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삶 자체가 갈등의 연속입니다. 혼자 견뎌내기 힘들잖아요? 서로에게 기대세요. 나만 아프고 힘든 것 아닙니다. 모두가 아픕니다. 서로 감싸 안고 새롭게 시작하세요”. 강연이 끝난 뒤, 누군가와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눈물의 출처를 찾아서
비로소 죽을 준비가 끝나자 관계자는 저승의 계단으로 참여자들을 이끈다. 이 세상에서 떠난다는 느낌으로 조용히 오른 저승길.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저승계단을 지나 도착한 임종체험관에는 수많은 관 사이로 촛불만이 타오르고 있다. 참여자들은 각자의 관 앞에 자리하고 수의를 입은 뒤 유서를 남길 준비를 한다. ‘이승에 남기는 마지막 말, 무엇이 좋을까…’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입장에서 작은 종이 한 장에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 기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동안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어진 유서 발표시간, 젊은 청년의 유서 낭독이 모두를 울린다. 그의 애잔하고 앳된 음성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시처럼 박힌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무엇이 이들을 삶의 끝자락에 내몰았던가. 기자 역시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 진다. 
 

내가 없어진다는 사실에 슬픈 것인지 남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사람들의 눈물은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사람들은 화해와 용서, 감정표현을 한다. 참여자들의 유서를 살펴보면 생전에 하지 못했던 사랑 표현을 담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왜 여유가 있을 때 표현하지 못했을까?

두 번째 삶, 주인공이 되다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뒤로 한 채 관속에 몸을 뉘인다. 이윽고 딱딱하고 차가운 관 뚜껑이 닫히고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이 찾아온다. 정말 죽는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샘솟고, 보고 싶은 얼굴들과 하지 못한 말들이 끊임없이 솟구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체험자들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시간. 지금 흘려보내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내일이다. 사람은 당장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존재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치 앞의 개인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너무 늦지 않도록 표현하는 삶, 매 순간을 소중히 사는 삶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남을 위한 인생도 막바지에 후회하는 삶도 아닌 나를 위한 삶, 행복한 인생을 위한 임종체험을 마치자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 든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보였던 삶에 대한 미련, 그리고 성찰. 죽음과 더불어 여생의 생각을 바꿔준 임종체험을 통해 참여자들은 두 번째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인식 속에서 정립되는 인생 쉼표
임종체험 뒤로 이어진 ‘데스 카페’ 프로그램에선 죽음을 주제로 한 토론이 이어진다. 사람들에게 죽음은 무서운 것, 피해야 하는 것,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데스 카페 운영자 하지은 씨는 “죽음이야 말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삶의 일부”라며 죽음의 인식을 통해 삶의 목표와 의미가 더욱 확실해진다고 얘기한다.

▲ ‘데스 카페’ 프로그램에 참가한 체험자들이 죽음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있다

삶과 죽음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열정적이며 성실한 인생을 얻을 수 있다는 그녀의 열변에 한 토론자가 말문을 연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 삶이 죽음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는데,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고 감정을 돌아보게 되면서 소중함과 사랑으로 남편을 생각하며 비로소 삶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후에도 토론자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삶의 자세와 죽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마치 ‘인생 쉼표’와 같다고 말하는 그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얻게 되는 생각들은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나마 얻을 수 있는 위안이자 휴식이라고 토론자들은 입을 모은다.
 

죽음에 대해 개방적·적극적으로 이야기하며 가족과 이웃,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확실하게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 밝은 표정으로 죽음을 논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그간 피하기만 했던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어볼 수 있었다.


Epilogue
효원힐링센터에서 만난 김한수(29)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잘 풀리지 않아 삶에 희망을 잃고 이곳을 찾게 됐다”며 “죽음을 통해 잊고 있던 삶과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느낄 수 있어 삶을 살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됐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책임져야 하는 20·30대. 그들의 막막함과 불안함을 떨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곳은 단순히 죽음을 체험하는 곳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현장이 아닐까. 화해와 용서, 실천에 행하기에도 부족한 시한부 인생, 소중한 삶을 어떻게 쓰는지는 그대의 몫이다.

전경환·이상윤 기자
전경환·이상윤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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