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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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숙 기자
  • 승인 2017.09.05 17:38
  • 호수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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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시선 20 : 차별과 권리 사이,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쟁
▲ 출처: 부산일보

● [View 1] 한 아이의 엄마

찬란한 10대, 빛나던 20대를 보낸 내가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품에 안고 거리에 서 있자니, 누군가 나더러 ‘벌레’란다. 언제부터 엄마들이 벌레가 된 걸까.

물론 요즘 일부 몰지각한 손님 때문에 생긴 문제들을 나도 알고 있다. 카페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거나,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소란을 피울 때 제지하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많은 엄마 중 일부가 아니던가. 성급한 일반화로 많은 엄마와 아이들이 문전박대 취급을 당하고 있다. 거리 곳곳엔 ‘아이는 출입할 수 없다’는 팻말을 내건 노키즈존이 확산되는 추세다. 아이들이 없는 어른들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저출산 사회를 문제시 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출산을 장려하는 듯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보고 싶은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인 걸까?

“아직 네가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그래”라는 말 한마디조차 쉬이 내뱉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됐던 혐오문화가 이제는 모든 엄마에게 향해 있다니 씁쓸하기만 하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나의 아이에게 예쁜 세상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내 딸아. 이 곳에 네가 뛰어놀 공간은 없는 것 같구나.

 

● [View 2] 불편한 사람들

오늘도 시작이다. 빨강, 노랑, 100만 원을 훨씬 웃도는 유모차를 끌고 이름도 모를 어느 맘 카페 회원들이 카페에 들어선다. 꽤 많은 카페 입구엔 이미 ‘○○맘카페 회원 출입금지’라는 공지가 적혀있는 상황. 그마저도 없는 일부 카페에서 그들만의 리그는 시작된다.

주위의 소란에 손님들이 하나둘 눈살을 찌푸린다. 아이들은 큰 소리로 울어대고, 묵직해진 기저귀를 알아챈 한 엄마가 가방을 뒤적거린다. 아이를 테이블에 눕힌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 점 부끄러운 기색 없이 기저귀를 간다. 칭얼거리는 아이의 발길질에 아이가 먹다 만 스파게티 접시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깨진 접시를 변상하라고 항의하는 점장의 얼굴에 대고 그녀는 말한다. “아이가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그래요?”라고. 이래도 노키즈존이 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같은 돈을 내고 카페를 이용하는 다른 손님은 물론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모든 엄마가 문제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일부 엄마들의 잘못된 양육 태도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게다가 어쩌다 발생한 사고에 아이가 다친다면 그 책임은 부모가 아닌 온전히 영업자들에게로 돌아간다니, 구조적인 취약점도 문제다.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아동과 이를 방임하는 무책임한 부모, 그리고 사회의 법이 만들어낸 업주들의 무조건적인 책임. 이 세 가지가 톱니로 맞물려 노키즈존 확산을 만들어냈다. 키즈카페가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이 시점에 노키즈존 또한 새로운 사회의 흐름은 아닌가?

 

● [Report] 노키즈존 확산

최근 어린아이를 동반한 손님을 제한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몰지각한 엄마를 지칭하는 ‘맘충’이라는 속어는 ‘아이를 동반한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증폭시키고 있다. ‘노키즈존’이 조용한 서비스를 즐길 소비자의 권리인지, 아이와 부모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인지에 대한 의견이 뜨거운 가운데 여전히 명확한 합의점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경기연구원이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아이들 때문에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무려 93.1%인데 반해 ‘노키즈존은 업주의 영업상 자유에 해당하는가’라는 물음에 ‘아니다’라고 답한 사람은 22.8%에 불과했다. 이 통계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미 노키즈존을 하나의 권리로 인식하는, 이른바 ‘소비자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엄마들을 향한 불명예의 수식어, 맘충. 이들을 퇴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은 사람이 노키즈존을 앞세우는 현실에 씁쓸하기만 하다.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아이가 자랄 환경을 제한하는 모습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자명한 사실은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노키즈존은 차별과 배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와 엄마에게 향한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공존의 삶에서 내몰고 있다. 불편함은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간단히 제거할 대상이 아니다. 강경함에 내몰린 그들이 언젠가 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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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entle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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