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총파업 현장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언론 총파업 현장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장승완·이상윤 기자
  • 승인 2017.09.26 12:43
  • 호수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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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향한 열망, 광장을 가득 메우다
▲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 촛불을 들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

Prologue

지난 2012년 ‘언론 총파업’ 이후 5년 만에 또다시,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MBC·KBS의 조합원 4천여 명은 지난 4일 자정 언론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 동안의 언론 적폐를 청산하고 공영 방송의 정상화, 나아가 언론의 총체적 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시행된 이번 파업은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다’는 이유로 행해진 정직이나 해고 등 부당한 처분과 정부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위한 언론계 블랙리스트로 공영 방송은 멍들대로 멍들었다. 하지만 공영 방송을 망친 이들은 아직도 언론 고위직에 포진하고 있다. 이에 KBS 고대영 사장과 MBC 김장겸 사장,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본지는 지난 11일과 15일 KBS 파업 집회 현장과 MBC·KBS 공동 파업 집회 현장을 직접 담았다.

‘공영방송 다시 국민 품으로!’
9월 11일 KBS 파업 집회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로 나오자 새벽 내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쳤다. 여의도 공원을 가로지르니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KBS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기자의 가슴은 어느새 뛰기 시작한다.
파업 집회가 예정된 KBS 신관으로 향하는 길마다 ‘MB의 꼭두각시 고대영은 퇴진하라’, ‘공영방송 다시 국민 품으로’ 등 언론 개혁을 주장하는 현수막이 빼곡하다. 스산하게 나부끼는 현수막이 마치 전쟁의 시작을 예고하는 듯하다. 집회 시작을 10분 앞둔 시점, 꽉 채워진 광장을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이 무참히 깨진다. 스크린과 음향 장비를 점검하는 5명 남짓의 사람들.
다소 정적인 분위기에 ‘집회 장소를 잘못 찾아왔나’라는 의문이 든 순간, 꽹과리 소리가 저 멀리서 미세하게 들린다. 꽹과리 소리를 뚫고 ‘언론 독립, 쟁취 투쟁! 결사 투쟁!’이라는 구호 소리가 울려 퍼진다. KBS 사내에서 진행된 집회, 작전명 ‘피리 부는 사나이’를 수행하고 돌아온 노조원들이다. 삽시간에 수 백 명의 사람들이 폭풍과 같이 신관 광장을 가득 채운다.
KBS 강승화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8일차 파업 집회의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다 순직한 선배 기자들에 대한 묵념이 시행되니 소란스러웠던 장내는 일순간에 적막이 흐른다.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언론의 자유’로 시대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분위기에,  기자도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묵념이 끝나자 “KBS 새노조 조합원 숫자가 2천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2천 번째 조합원이 선물로 뭘 받았는지 궁금한데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의 퇴진을 선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강 아나운서의 첫 멘트를 시작으로, 언제 조용했냐는 듯 힘찬 구호와 함께 파업에 참가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직 앳돼 보이는 신입기자부터 아나운서, PD까지 언론 정상화를 위해 모두가 하나 된 순간이 실로 대단하기만 하다.
“국민이 떨쳐 일어났기에 탄핵이 됐고, 정권이 바뀌었고, 지금 저희가 총파업까지 돌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언론적폐 청산과 공영방송 정상화, 이제는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태훈 새노조 부위원장의 발언을 끝으로 8일차 KBS 파업 집회가 마무리된다. 구호를 외치는 그들의 눈빛에는 비장함이 감돈다. 맨 앞줄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조합원부터 계단 끝에서 나지막이 구호를 외치는 조합원까지 모두 하나같이 결연하다.  짧고 강렬했던 KBS 파업 집회 현장을 떠나 MBC 노조원과 KBS 노조원, 그리고 시민이 하나 되는 ‘불금파티’ 현장으로 향한다.

▲ KBS 신관에서 구호를 외치는 노조원들

돌아오라 마봉춘(MBC)·고봉순(KBS)! 9월 15일 ‘돌마고’ 집회

지난 15일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붐비는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 아홉 번째 돌마고 불금 파티가 열리는 현장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다. 파업 집회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축제 같은 분위기이다. 상기된 표정으로 열심히 캔커피를 나르던 황수지 기자는 “5년 전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MBC 파업을 겪어 생생히 기억난다. 그때보다 분명히 더 어려운 상황이지만 신입이라 어리바리했던 5년 전 모습을 지우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인다.
사회를 맡은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이 마이크를 잡기만 했을 뿐인데, 장내가 한순간에 정리된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저마다 한 손엔 카메라, 다른 한 손엔 팸플릿을 들고 일제히 시선을 집중한다. 집회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하던 직장인 이지연(26) 씨는 “동생 녀석이 고2인데 기자가 꿈이래요. 지금도 독서실에서 공부 중인데 이런 장면을 놓치면 되겠어요? 이 누나가 생중계라도 해줘야죠”라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어둠이 깔리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너도 나도 피켓을 들고 자리에 앉아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자의 마음도 설렌다. 두 아들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한 박광민(43) 씨는 “오늘 집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하자마자 간식을 먹고 있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왔다. 저번 촛불집회 때 추운 날씨 탓에 한 번을 못 데리고 나와서 이번에 꼭 와야겠다고 생각해서 부리나케 오게 됐다”며 입을 연다.

▲ 집회현장에 걸린 현수막

푸른 눈의 목격자,
자랑스러운 평화 집회
수많은 인파를 뚫고 무대 앞으로 향하자 집회 장면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한 외국인이 눈에 띈다. “Excuse me.”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영어 한 마디를 시작으로, 서투른 영어로 국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Germany”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집회 분위기는 어떠냐고 묻자 해맑게 웃으며 딱 한 단어로 답한다. ‘Respect.’
고등학교 3학년에 불과한 소년이 첫 발언을 시작한다. 아나운서가 꿈이라며 이런 시국에 집에서 공부만 할 수는 없었다고 외치는 그. 발언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류홍인(19) 학생을 붙잡자 “미래의 언론인이 될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나왔어요. 작정하고 나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 아니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우리나라 언론의 미래가 마냥 어둡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시곗바늘이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집회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든다. 김 사무처장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하고 포옹하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방송사를 초월해, 또 직업을 초월해 하나 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해졌고,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간절한지 느끼기에 이미 충분하다.
김 사무처장은 “젊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공영방송은 존재가치가 없다”며 이 사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번 기사를 통해 현장을 생생히 느끼고 공영방송의 정상화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는 소중한 격려 말씀을 간직한 채 발걸음을 돌린다.

Epilogue
지난해 국민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고, 결국 그 촛불이 모여 정권은 교체됐다. 하지만 언론은 바뀌지 못했다.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았고 KBS와 MBC의 수많은 구성원들은 결국 또 한 번의 전쟁에 돌입했다. 집회 현장을 취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결연함’이었다.
하지만 파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도 꽤 있는 듯하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공영 방송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이유이다. 집회 장소에서 시민들의 지지 서명을 받는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이제 와서 이러면 지난날들의 잘못이 용서되고 상처가 아물 줄 아느냐”는 어르신의 고함에 기자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영 방송은 더 이상 언론의 기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 하지만 지난 9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권력이 MBC·KBS를 철저히 파괴할 때도 죽지 않고 버틴 사람들이 있었다. 조직은 죽었지만 양심은 살아있었다.

장승완·이상윤 기자
장승완·이상윤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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