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인 캠퍼스 10. 푸생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있는 풍경>
캔버스 인 캠퍼스 10. 푸생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있는 풍경>
  • 단대신문
  • 승인 2017.11.13 15:16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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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그려진 사랑에 대한 회화적 응시
▲ 알베르트 코이프, <동물들과 함께 있는 오르페우스>, 1640, 113X167 cm, 캔버스에 유채

니체(F.Nietzsche)는 “이 세계는 아름다움으로서만이 긍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우리는 이 덧없는 세계 속에 내재한 순수한 아름다움을 명화 속에서 더욱 풍부하게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 바로크 최대의 화가에 푸생이 있다. 그는 프랑스 인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하여 그림을 그렸던 화가다. 풍부한 고전 교양을 지녔던 푸생은 그림 속에 숭고한 사유와 감정을 담기를 원했다. 그는 회화의 최고 목표를 고결하고 진실한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푸생은 한때 루이 13세의 초청으로 조국 프랑스로 돌아와서 그림을 그렸으나, 끊임없이 그의 명성과 실력을 질투하는 미술가들의 모략으로 깊은 실망을 느끼고 다시 1642년에 로마로 떠나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있는 풍경>은 그가 제2의 고향으로 여긴 로마에서 안정을 되찾은 후에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에 앞서 그는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이라는 걸작을 그렸는데, 그 회화적 깊이가 이 작품에도 유감없이 구현돼 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있는 풍경>은 영웅적 이상주의 풍경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뮤즈인 칼리오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인 아폴론을 닮아 리라를 훌륭하게 탄주(彈奏)했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타면 그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들과 수목들도 감응했다. 그런 오르페우스가 아름다운 여인 에우리디케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혼인의 신 휴메나이오스가 횃불을 들고 축하하러 왔으나 횃불에선 연기가 자욱할 뿐이었다. 불길한 전조였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우리디케가 친구인 님프들과 거닐고 있을 때, 웬 양치기가 그녀에게 추근거렸고, 그를 피해 도망가던 그녀는 그만 뱀을 밟아 뱀에게 발을 물려 죽게 됐다.

슬픔에 잠긴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하계(下界)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는 하계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에게 음악을 연주하며 눈물로 아내를 되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모든 망령들이 오르페우스의 애달픈 노래에 눈물을 흘렸고, 시지푸스도 바위 위에 앉아 노래를 들었으며, 복수의 여신조차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결국 하계의 신 하데스는 감동해 오르페우스에게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오르페우스가 지상에 도착하기 전에 뒤따라가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하계의 험한 길을 말 한 마디 없이 열심히 앞장서서 걸어갔고, 에우리디케는 그런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가자 마침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출구가 보였다. 오르페우스는 기쁜 나머지 하데스와의 약속을 잊고 아내가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하계로 되끌려갔다. 그들은 서로 포옹하려고 팔을 내밀었으나 아무 소용도 없이 허공만 휘저을 뿐이었다. 에우리디케는 슬픈 목소리로 오르페우스에게 말했다. “이제 최후의 이별입니다. 안녕히.” 그리고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있는 풍경>을 보면, 화면의 오른쪽에서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타고 있고, 오르페우스로부터 세 사람 건너 기겁을 하며 몸을 피하는 여인이 에우리디케다. 그녀의 발 뒤에 꽃바구니가 쓰러져 있고 꿈틀거리는 뱀이 보인다. 낚시질을 하던 청년이 에우리디케의 비명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있다. 에우리디케는 이미 뱀에 물린 것이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오르페우스 일행이 있는 부분과 멀리 강 건너 보이는 성과 산야에만 햇빛이 비치고 있다. 하늘엔 이들의 불길한 앞날을 예고하듯 먹구름이 깔려 있고, 성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휴메나이오스의 전조를 상징하는 듯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의 사건을 푸생은 밝음과 어둠을 대비시켜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베르니니는 푸생을 가리켜 “위대한 이야기의 화가이며 신화 창조자”라고 칭송한 바 있는데, 실제로 푸생은 당시 로마의 인문학자들조차 놀랄 만큼 광범위한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내적 주제가 떠오르면, 거기에 맞는 장면을 수많은 역사적, 신화적, 문학적 이야기들 속에서 끄집어내어 표현했던 화가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다른 화가들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인 과정을 거친다. 그는 먼저 선택된 주제를 여러모로 검토한 후에 거기에 맞는 효과적인 장면을 결정한다. 그런 다음 등장인물의 심리적 특징을 적절하게 드러내기 위한 포즈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작은 양초 조각상으로 만들어서 정해진 공간에 배치해보는 것이다.

 

푸생은 이 과정이 만족스러우면 작은 조각상들을 확대해 거기에 옷을 입히고 모형의 무대장치에 배치시킨 후 여러 방향에서 조명을 비추어봤다. 때로는 실제 모델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빛의 효과가 적절하다고 생각되면, 그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고도로 계획된 질서감각이 숨 쉬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의 그림이 결코 형식적이거나 딱딱하지 않은 것은 주제를 형상화하는 유연한 상상력과 대상을 살아 있게 표현하는 역동적 생명의 시각 때문이다.
 

임두빈(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미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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