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의 애니인사이드 <12> 호빵맨은 어째서 머리를 나눠주는걸까?
글그림의 애니인사이드 <12> 호빵맨은 어째서 머리를 나눠주는걸까?
  • 단대신문
  • 승인 2017.11.14 13:22
  • 호수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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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를 나눠주는 호빵맨

요즘은 슈퍼 히어로의 시대라 해도 좋을 만큼 정말 많은 히어로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슈퍼 히어로라고 하면 당신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천하무적 아이언맨, 어둠의 기사 배트맨 등 많은 영웅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웅 이야기는 인류가 존재했던 이래로 항상 인기 있는 이야기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숙하지만 조금은 색다른 히어로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호빵으로 만들어진 영웅, 호빵맨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얼굴을 나눠주는 전대미문의 히어로 호빵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호빵맨의 시작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호빵맨은 현재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호빵과 ‘Man’, 즉 호빵을 나눠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망토를 매고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빼면 현재의 호빵맨과는 사실상 다른 캐릭터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호빵맨의 일과는 세균맨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배고픈 어린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것이 그의 업무였죠.

그러나 놀랍게도 이 원조 호빵맨은 충격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호빵맨은 여느 때처럼 분쟁지역으로 빵을 들고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빵맨은 그를 적의 전투기로 오인해 발사된 미사일에 격추돼 사망하고 맙니다. 슈퍼 히어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허무하고도 충격적인 최후이지요.

이러한 비극의 배경에는 호빵맨의 원작자 ‘야나세 타카시’ 선생의 삶이 있습니다. 야나세 타카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년 뒤인 1919년에 태어나 전후의 빈곤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야나세 선생은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 돼 중일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당시의 일본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신 나간 군대였습니다. 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들조차도 보급을 받지 못해 쫄쫄 굶는 상황이 일상이었고, 전투가 드문 지역에서 복무하며 총 한 방도 쏴보지 않았던 그도 군량 부족 사태를 빈번하게 겪었습니다.

강제로 징병된 전선에서, 굶주림의 고통까지 받던 그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생이 전사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장에서의 괴로움과 형제를 잃는 고통은 그에게 반전사상과 굶주림에 대한 분노를 심어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온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부업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이윽고 전업 만화가로 전직하게 됩니다.

청춘을 전장에서 보내고 뒤늦게 시작한 만화가의 길. 그의 나이 54세가 되던 1973년, 우리는 드디어 세상에 하나뿐인 배고픔을 채워주는 영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난 것이 바로 사상 최고, 최강의 빵셔틀 호빵맨입니다.

 

▲ 1969년 호빵맨의 초기 모습

만화가가 된 야나세 타카시는 원조 호빵맨의 정신적 후계자인 지금의 호빵맨을 탄생시킵니다. 이때부터 호빵맨의 상징인 ‘머리 나눠주기’가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호빵맨의 행동이지만, 당시만 해도 출판사와 학부모 단체에서 괴기스럽다는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철학이 담긴 호빵맨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도우려면 자기 자신도 상처받기를 각오해야 한다. 스스로를 희생할 각오가 없는데 어떻게 정의를 실현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기면서 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호빵맨의 머리는 곧 호빵맨 힘의 원천입니다. 자기의 머리를 나눠주면 그만큼 약해집니다. 그리고 악당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기에 호빵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호빵맨은 타인의 고통(배고픔) 앞에서 침묵하지 않습니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머리를 나눠주는 호빵맨의 모습을 그저 엽기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54세, 만화가의 데뷔로는 굉장히 늦은 나이입니다. 하지만 야나세 타카시는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해도 느리고, 머리도 나빠서 보통 사람들이 3일이면 아는 것을 30년 걸려서야 간신히 안 때도 있습니다. 호빵맨도, 그림도, 음악도 천천히 조금씩 해 왔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름의 발자취가 만들어졌더군요. 저보다 빨리 출세한 사람들이 어느덧 은퇴하는 걸 보니 탁월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그는, 남들은 이미 은퇴하고도 남았을 나이인 93세의 나이로 일본 만화가 협회장에 취임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다 2013년 10월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삶은 호빵맨의 얼굴 속 팥으로 남아 오늘도 세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박성환(전자전기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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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을사랑한 2018-09-03 10:20:55
어렸을때 정말 좋아했던 호빵맨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호빵맨의 역사를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네요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