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하루 - ‘그들’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하루 - ‘그들’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 설태인·양민석 기자
  • 승인 2017.11.21 11:32
  • 호수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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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곡동 다문화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이주민

Prologue
낯선 땅에서 때로는 ‘머리색이 검은 동양인’이라고 불렸던 1970~1980년대의 8천395명 파독 광부와 1만371명 파독 간호사의 삶을 기억하는가. 이처럼 광복 이후 세계화의 물결을 맞이하기 시작한 한국의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모국을 떠나 외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를 안은 채 이주민의 꿈을 펼쳤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인 오늘날, 한국은 외국인 이주민 204만9천441명(2016년 기준)을 받아들이는 다문화 국가가 됐다.

TV와 인터넷 화면이 아니더라도 동네 길거리에서 이주민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한국인은 아직 ‘그들’의 삶을 선뜻 ‘우리’의 품에 안지 못하는 서먹서먹한 사회에 살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외국문화 개방도 순위는 전체 60개국 중 53위(2014년 기준)로 주요 선진국에 비교해 낮은 다문화 수용력을 보여준다.

현재 ‘국경 없는 마을’이라 불리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도 90여 개국의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외국인이 근무할 수 있는 2천여 개의 업체가 자리한 반월국가산업단지와 시화국가산업단지의 배후도시이자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게 전·월세 등을 구할 수 있는 원곡동은 이주민 문화의 요람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2009년 다문화 특구로 지정된 원곡동을 찾았다.

 

오전 8시, 국경 없는 마을의 대문을 열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안산역 1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 걷다 보니 안산 다문화거리가 기자를 반긴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간판이 즐비하고, 거리에선 낯선 향신료 냄새가 풍기는 이곳.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 중 십중팔구가 외국인인 걸 보아하니, 인구의 10명 중 7명이 외국인인 원곡동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 난다.

언론을 통해 원곡동의 좋지 않은 소식을 자주 전해 들어서인지, 다문화거리를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이 망설여진다. 그때 거리 순찰을 하던 다문화안전경찰센터 송맹석(53) 경위가 기자를 향해 다가온다. “원래 여기가 이렇게 깨끗하진 않았어. 1년에 담배꽁초만 3천 개, 인력사무소 전단 같은 쓰레기 때문에 길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다니까.”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다문화거리에는 매일 새벽 소음공해 때문에 주민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흉기를 들고 다니는 이주민도 있었다는 것이 송 경위의 설명이다.

그러나 다문화 특구 지정 이후 다문화 음식 거리가 형성되고 안산시에서 ‘살기 좋은 마을 운동’을 진행하면서 원곡동은 안전한 곳으로 거듭났다. 경기도 전체 범죄 현황 중 안산시가 차지하는 비율은 8.8%(2014년 기준)이다. 안산시 단원구의 외국인이 경기도 거주 외국인의 12.7%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구수에 비해 범죄율은 높지 않은 편이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원곡동의 위험한 이미지만 믿은 채 편견을 가지고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 엠마우스어린이집의 원생

오전 10시, 무지개 같은 어린이의 마음
원곡2동에 위치한 엠마우스어린이집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 2007년 개원한 이 어린이집에서는 카메룬, 콩고, 중국 등 5개국에서 온 0~1세의 외국인 아이들 11명이 생활하고 있다. 새싹 1반 담당교사 A 씨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며 콩고에서 온 프린스(1)를 품에 안는다.

저소득층 이주노동자인 부모를 위해 24시간 무료로 아이를 돌봐주건만, 말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지 어느 날 말도 없이 홀랑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13년째 엠마우스어린이집의 운영을 맡고 있는 이순자(71) 원장은 “교사들에게 항상 베푸는 것에서 끝내야지, 감사 인사를 바라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부모가 아이를 돌봐줘서 감사하다며 큰절을 하고 돌아간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며 감동의 순간을 전한다.

분윳값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지원하는 엠마우스어린이집이지만, 정원이 정해져 있는 탓에 많은 아이를 돌보지는 못한다. 결국 근처 유료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도 있지만, 그마저도 형편이 어려워 본국으로 아이를 돌려보내기도 한다.

어린이집을 나서며 다문화 거리로 돌아가는 길, 국적은 상관없다는 듯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눈에 밟힌다.

 

정오, 네팔에서 온 탄두리치킨 한 조각
중국,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의 음식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점심시간을 알린다. 원곡동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인도·네팔 요리 전문점 ‘칸티푸르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칸티푸르 레스토랑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곳이다. 가네시 리잘(40) 사장은 1999년부터 김포시의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레스토랑을 개업해 한 달에 한 번은 꼭 주민 어르신을 위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외국인 복지개선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힘쓰는 이 구역의 유명인사다.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웠다며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원곡동이 다문화 특구로 지정된 뒤 음식점 간판이나 메뉴판을 시에서 지원해줬다. 예전에는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위험했는데 요즘은 거리도 안전해지고, 세계 음식을 즐기기 위해 원곡동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며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오후 2시, 어떤 누구라도 당신은 사랑방 손님
다음으로 발걸음을 향한 곳은 비영리민간단체인 ‘안산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 동포의 집’. 이곳에서는 중도입국 자녀와 이주노동자를 위한 기초 한국어 교육과 노동 상담, 진료 등이 이뤄지고 있다.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에 걸린 커다란 중국 지도가 기자를 맞이한다.

센터 한편에 마련된 교실에서는 열댓 명의 학생이 서예 연습에 한창이다. 초등학생부터 24세까지, 모두 중국에서 지내다가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자녀들이다. 한국에 온 지 1년이 됐다는 진영(15) 씨는 “처음에 한국 왔을 때는 다시 돌아가고 싶었어요. 한국어 몰라서, 글자 몰라서 힘들었어요”라고 말한다.

평일에는 중도입국 자녀의 배움터인 이곳은 주말에는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교실이 된다. 한국에 입국하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는다. 5년 이상 경력 등 다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전문 취업비자(E7)와 달리 비전문 취업비자의 유효기간은 4년 10개월. 입국한 지 3개월 안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예외 없이 본국으로 돌려보내 진다.

이곳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염미혜(47) 씨는 “중국 동포 같은 경우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아요.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와서 살다가 돈벌이도 안 되고, 몸도 아프면 폐인이 되는 거지”라며 담담히 이주노동자들의 얘기를 전한다. 실제로 술을 먹다가 경찰에 붙잡혀 오는 이주노동자가 꽤 많지만, 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쉼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 “국회의원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신경 안 써요. 자기들 표하고 관련이 없거든. 가장 필요한 게 외국인 노숙자 쉼터인데, 관심 없어서 안 하는 거죠”라는 염 씨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안산이주민노동자의 집을 나서니 굵은 장대비가 어깨를 때린다. 건물 처마 밑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고 모인 이주노동자들로 인산인해다. 홀로 타지에 나와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위해 편히 쉴 곳 하나 마련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발걸음만 빨라진다.

 

오후 4시, 세상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도서관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도착한 곳은 안산 다문화작은도서관. 23평 남짓한 도서관에는 10명 남짓한 이주민들이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다. 23개국 1만4천 권의 원서가 촘촘히 꽂힌 서가와 함께 책을 읽기 위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 검색용 컴퓨터를 갖춘 이곳은 2008년 10월 개관한 한국 최초의 다문화도서관이다.

다문화작은도서관을 ‘세상에서 가장 문턱이 낮은 도서관’이라고 소개하는 정은주(44) 부관장. 이곳에는 문화 소외계층으로 분류되는 이주민 중에서도 나이가 많거나 한부모 가정 등 가장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언어, 나이, 문화적 배경에 맞춰 운영되는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은 이주민에게 큰 위로가 된다. 시골 농가의 일을 돕는 이주노동자 중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다가 전기장판이 불타거나, 밭 주인 할아버지에게 머슴 취급을 당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주민이 많다. 정 부관장은 “『고향의 봄』 같은 그림책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이주노동자가 많다. 홀로 한국에 와서 돈도 떼이고 학대를 받으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데, 독서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을 돕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이주민의 둘도 없는 벗이 된 정 부관장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원곡동을 애정했던 것은 아니다. 첫 원곡동 방문 당시 ‘여성 장기 급구’라고 쓰인 전단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정 부관장. 알고 보니 장기로 일할 수 있는 여성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의미였지만, 원곡동이 위험한 동네라는 선입견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정 부관장은 “언론에선 위험한 곳으로 비치지만 인구수에 비해 범죄율도 높지 않고, 이주민 때문에 위험한 일을 겪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이주민들을 연구·설문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주체적인 인격으로 대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 원곡동 다문화거리의 저녁 풍경

Epilogue
오후 7시, 찬찬히 내려앉는 어둠과 함께 하나둘 켜지는 네온사인이 원곡동 다문화 거리를 비춘다. 반찬거리를 사 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 ‘인력 구함’이라고 쓰인 전단을 골똘히 바라보는 사람, 공원 벤치에 걸터앉아 잠시 한숨 돌리는 사람까지……. 이주민들의 치열한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만 같다.

원곡동 취재를 다녀온 기자에게 한 수습 기자는 이렇게 물었다. “안산? 거기 위험한 곳이잖아요.” 안산이주민노동자의집에서 만난 염 씨 또한 “한국인이나 돕지, 무엇하러 외국인을 도와주느냐”는 호통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외국인이 많은 동네라면 범죄율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여전히 많다.

이처럼 꿈과 희망을 품고 낯선 땅을 찾은 이주민들은 수많은 편견과 멸시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온종일 원곡동 골목을 누비고 다닌 기자에게 이곳의 사람들은 입 모아 말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그들’이 아닌 ‘우리’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해 함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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