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인문학의 미래

.l승인2017.11.21l수정2017.11.22 22:40l1435호 14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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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과학을 ‘편리’라는 말로 설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은 생활의 편리를 넘어서서 삶의 양태와 인식의 변화까지 견인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추세에서 가장 위협받는 분야의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인문학이 아닐까싶다. 인문학의 대척점에 놓인 것으로 여겨졌던 공학이 어느덧 인문학을 포섭하는 구도로 재편되어가고 있다.

특히 어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분야다. 인터넷 검색엔진 기업에서 제공하는 인공지능 기반 번역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외국어 학습이 불필요한 시대가 오리라던 전망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칩을 두뇌에 이식해 별도의 디바이스 없이도 다중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른바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선 셈이다. 어학 관련 학과 중에 문화나 공학과의 융합을 표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장 난해하다고 알려져 온 한문고전의 번역에까지 인공지능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한문은 어형변화가 없는 고립어인데다가 낱글자 하나하나에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으며 일반적 통사구조에서 벗어나는 예외적 구문도 유달리 많다. 또한 시기나 형식에 따른 변화도 크고, 철학역사학문학예술학 등에서 내원한 고도의 상징이나 함축적 표현들도 부지기수다. 한문을 동아시아 인문고전학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분야가 인공지능에 의해 번역된다니, 인문학자들에게는 이세돌의 패배 못지않은 충격으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될 이 과제가 언제쯤 현실화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공학자나 산업자본가의 손에 맡겨지기 전에 고전번역 종사자의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번역은 인문학자들에게 결코 재앙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료의 수집과 검색, 정리와 해독과 같은 영역은 인공지능에 맡기는 대신 통념을 꿰뚫는 가치체계를 구축하거나 미래를 전망하는 아젠다를 모색하는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포스트휴먼의 출현으로 이어진다면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문학을 파괴하리라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술과 자본에 압도당해 인간 자체를 물적 존재로 대상화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점검하며 성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이것이 오늘날 인문학에 주어진 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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