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동문 : 세계가 인증한 봉사왕
이해영 동문 : 세계가 인증한 봉사왕
  • 장승완 기자
  • 승인 2018.01.09 19:56
  • 호수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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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체육·72졸) 동문
▲ 감사패를 들고 있는 이해영 씨

Prologue
미국 LA에서 구두닦이부터 화장실 청소까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청년이 돼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에서 통역을 맡았고, 성남 세계 태권도 대회에서는 미얀마 대통령 딸의 통역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무색하게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통역 봉사를 이어나가는 그는 봉사왕 이해영(체육·72졸) 동문이다.
수많은 표창과 훈장의 소유자. 세계에서 가장 통역 봉사를 많이 했다고 인정받은 기인. 하루 3시간 20분씩 꼬박 30년을 해야 세울 수 있는 기록을 만들어 세계 기네스 레코드 월드에 등재된 이해영 동문을 죽전캠퍼스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처음 통역 봉사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아버지가 한국은행에서 일하셨는데 나고야 지점장으로 가게 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 일본의 외국인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자연스레 일본어와 영어 등 외국어를 익히게 됐다. 이후 미국으로 가서 언어로 힘들어하는 한국인을 하나둘 도와주다보니, 어느새 LA 한인회에서도 통역을 부탁하는 일이 생겼다. 나의 통역 봉사로 행복해하는 사람을 보며 이 길이 나의 길이라는 것을 느꼈다.

 

▲ 세종대왕에 대해 설명하는 이해영 씨

▶ 국내의 굵직한 행사마다 통역 봉사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행사에 참여했나.
처음 국내에서 통역 봉사를 한 것은 88올림픽 때였다. 88올림픽은 그때 당시 우리나라에서 열린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의 국제 행사였는데, 그 때문에 외국인 능력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던 한국 정부가 LA 한인회까지 연락 했고, 조국을 위해 봉사할 기회라 여기고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향했다. 이후 세계 태권도 대회와 여주 세계 도자기 엑스포, 2002 한일 월드컵, 17대, 18대 대통령 취임식 등에서 통역 봉사를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민속촌에 방문한 일본인 통역 및 가이드 봉사이다. 같이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친해져, 저녁에 파전과 동동주를 파는 민속주점에서 거리낌 없이 함께 술자리를 즐겼다. 즐기다 보니, 일본인 관광객들이 과음해 정신을 못 차리고 토를 하는 등 난리였다. 결국, 직접 가까운 여관에 데려다주고 아침에 해장용 콩나물국까지 끓여 대접했다. 그랬더니 너무 고마웠는지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고 한국에 오면 나를 찾는다.

 

▶ 통역할 때 어학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나.
마음을 비우고 외국인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통역이 자연스러워지고 그들도 번역된 언어만 듣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정과 문화까지 듣게 된다. 또, 모든 것을 통역하려고 애쓰면 안 된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이나 문화는 그냥 한국말로 알려줘야지 억지로 통역하면 오히려 잘못된 정보만 알려주기에 십상이다.

 

▶ 통역 봉사를 한 기록을 모아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친구가 언젠가 내게 “봉사를 수없이 해 왔으니, 그동안의 기록을 모아보자”고 권유했다.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일일이 봉사 활동을 한 기관을 통해 봉사 인증서를 받았고, 이를 한국 기록원에 보내 ‘3만 2천여 시간’ 인증을 받았다. 결국 2007년 기네스 월드 레코드 ‘역사와 사회-사람과 장소’ 분야에 ‘세계 최장시간 통역 자원봉사’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때 기분은 정말 짜릿했다. 계산해보니 하루 3시간 20분씩 꼬박 30년을 해야 나오는 기록이었다.

 

▶ 취업을 위해 의무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발적인 봉사 활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본인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언어에 흥미와 재능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역’이라는 봉사 활동으로 바꾸니 참된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린 교육 봉사나 관련 행사 봉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 이해영 씨가 외국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통역 봉사를 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한국에서 처음 통역 봉사를 하던 30년 전에는 모든 것이 낙후됐고, 외국인이 우리의 문화를 낮춰 보곤 했다. 하지만, 요새 보면 외국인이 마치 우상의 나라에 온 것처럼 기뻐하고 사진 찍기 바쁘다. 통역 해 온 30여 년 동안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느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또, 개인적으로 2005년 성남 세계 태권도 대회에서 레바논 대통령의 딸인 커리네 머씨의 통역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문화를 많이 알려줄 수 있어서 정말 보람 있었다.

 

▶ 통역 봉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2007년 경기도에서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1365’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봉사 활동을 하며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인데, 경기도 자원봉사센터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며 그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제헌절 61주년에는 국민대표 61명에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몇 년 전 태안 기름유출 사건 때는 두 발 벗고 나서서 거의 처음으로 기름 닦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하나둘 사람이 모이더니, 결국 수많은 인파가 기름을 닦는 봉사 활동을 함께 했다.

 

▶ 우리 대학의 교시는 진리, 봉사다. 봉사를 몸소 실천하며 깨달은 진리가 있나.
헌신적으로 노력하면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다. 통역 봉사를 하기 위해 관련 서적과 문헌을 도서관에서 밤새 찾아 읽는다. 대충 팸플릿만 읽고 가도 상관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통역을 하는 순간만큼은 이 나라의 대표라는 생각을 해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심지어 통역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버스를 갈아타며 몇 시간을 가기도 한다. 매일 이런 삶이 반복되면 대충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최고의 통역 가이드를 만났다며 즐거워하는 외국인을 보며 다시 매 순간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일단 평창동계올림픽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처음 국내 통역 봉사를 시작한 88올림픽 이후 최초로 맞는 올림픽인 만큼 감회가 새롭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불편함 없이 올림픽을 즐기고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과 높은 문화 수준을 경험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 언제까지 봉사 활동을 할 계획인가.
봉사 활동의 끝은 없을 것 같다. 힘 닿는 데까지 봉사를 이어나가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록도 세울 것이다. 또 노벨 평화상 수상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봉사를 이어나가다 보면 국제 사회에서 평화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을 날도 오지 않을까.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파랑과 주황이 섞인 색이다. ‘한국 자원봉사의 해’의 로고가 파란색과 주황색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봉사밖에 없으니 나를 표현하는 색도 봉사 관련 색밖에는 없는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어떤 분야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묵묵히 나아가면 반드시 그 성과가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 미국에서 구두닦이 같은 잡일을 도맡아 하며 불확실한 삶을 살았지만, 통역을 통해 나만의 분야를 개척했고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선을 다한 결과 ‘기인’으로 인정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 대학 학생들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아 학교를 빛내는 인재가 됐으면 한다.


Epilogue
봉사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발적인 봉사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이해영 씨의 삶은 더욱 빛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통역 봉사를 한 기인’이라는 특별한 타이틀과 달리 그의 모습은 평범했다. 평범함 속에 빛나는 그의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기자는 그것이 ‘열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어를 향한 열정이 자연스레 통역 봉사로 이어졌고, 통역 봉사를 통한 수많은 표창과 훈장이 다시 통역 봉사를 향한 열정이 되지 않았을까. 적지 않은 나이에도 통역 봉사를 위해서 새벽같이 일어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삶에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우리 대학 학우들이 이해영(체육·72졸) 동문의 삶을 통해 ‘올바른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장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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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btist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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