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실명제
  • 이상은 기자
  • 승인 2018.01.10 09:26
  • 호수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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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시선 25 : 명예훼손 VS 표현의 자유, 그 간극의 딜레마

[View 1] 연예인 A

어느덧 데뷔 10년 차를 바라보는 나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을 연예인으로 살아왔다. 사람들은 연예인의 삶이 늘 화려하고 반짝일 줄만 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연예인이 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문제의 영상이 떠돌기 시작한 지도 3년째. 악의적인 캡처로 그럴듯하게 꾸민, 내가 같은 동료를 따돌렸다는 내용의 게시물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지친 지 오래다. 내가 어떻게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판단한다. 사건 당사자가 직접 해명에 나섰지만 귀를 막고, 눈을 가린 그들에게 이 간절한 뜻이 전달될 리가 없었다.

어린 나이도 아니기 때문에 일부 안티팬이 관심을 끌어보고자 욕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화살이 내 주변 사람에게도 향하길 수차례. 이를 볼 때마다 대역 죄인이 된 기분은 좀처럼 감출 수 없다.

나도 한 명의 사람이다. 내가 TV 속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줄 때가 오긴 할까. 악성 댓글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의 숙명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이 정도 아픔쯤은 감수해야 한다지만, 나에게 겨누어진 칼날이 너무나도 날카롭다.

[View 2] 법조인 B

장밋빛 미래를 선사할 것만 같던 인터넷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현재를 맞이하고 있다. 익명 뒤에 숨어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고, 무고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성희롱 발언까지……. 이런 시점에서 반사회적 표현의 남발을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가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일리가 있다. 언어폭력이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지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나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 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에 비춰 강하게 보호돼야 한다. 익명 표현은 인터넷 정보 전달 신속성 및 상호성과 결합해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은 물론,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기초가 된다.

또한, 실명으로 올렸다고 해도 글을 올린 ‘나’는 수많은 군중 속 한 명이다. 이름만 보고 ‘나’인 것을 알아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인터넷 실명제 시행이 악성 댓글 작성 여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인터넷 실명제는 사이버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후규제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임이 맞다. 그러나 인터넷의 역기능에 집착해 과도한 규제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Report] 인터넷 실명제

지난 2007년에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는 5년간의 시행 끝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며 사실상 폐지됐다. 이에 현재까지 사이버상에서 불필요한 신원 확인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5년 흑색선전, 허위사실 유포 방지 등 선거 공정성 확보를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그 우월한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뜻하며, 또 그러한 표현을 보장받을 권리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 이념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내뱉지 못하는 억압된 마음이 사이버 공간에서 표출될 수 있다. 그렇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올린 글이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이와 관련한 규제의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위태로워지는 사이버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우리는 군중(群衆)이 아닌 공중(公衆)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논의의 골자는 실명 공개 여부가 아닌 문화 지체 현상을 극복하는 것으로 흐름을 전환해야 한다. 인터넷 성숙도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이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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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irdsilv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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