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① 포르투갈의 페드루 1세 & 카스트루의 이녜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① 포르투갈의 페드루 1세 & 카스트루의 이녜스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3.06 21:22
  • 호수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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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역사 속에는 권력을 위해 사랑도 우정도 저버린 냉혈한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위해 목숨도 왕좌도 내던진 로맨티스트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중 몇 연인들의 사랑과 그들의 이야기가 역사와 문화 등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4세기, 포르투갈의 국왕이었던 아폰수 4세는 후계자인 페드루 왕자를 카스티야의 공주 콘스탄세와 결혼시켰습니다. 이 정략결혼을 위해 콘스탄세는 여러 말동무를 데리고 포르투갈로 왔고 그중에는사촌이자 귀족의 서자 가문에서 태어난 서녀, 이녜스 데 카스트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왕자가 공주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동화와는 달리 왕자는 공주 옆의 이녜스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아무리 정략결혼이라지만 신혼부터 신랑이 다른 여자에게 빠졌으니 양측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드루는 이녜스에게서 헤어 나오질 못 했죠. 이녜스의 처소에 있는 수도관을 통해 매일 밤 몰래 편지를 보냈고 눈만 뜨면 이녜스를 찾아 뛰쳐나가고는 했습니다. 국왕은 아들의 열정이 식기를 기다려 보기도 하고 이녜스를 국외로 추방도 해봤지만 사랑은 계속 되었습니다.

 

▲ 카를 브률로프, <이녜스 드 카스트로의 죽음>, 1841

그런 와중 외롭게 살던 콘스탄세가 결혼 4년 만에 출산 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자가 하나뿐이라, 더 많은 후계를 보기 위해 국왕은 아들을 재혼시키고자 했지만 페드루는 이녜스가 아니면 안 된다며 단호했습니다. 하지만 왕자에게 어울리는 신분이 아니었던 이녜스는 왕에게 있어 눈엣가시일 뿐이었습니다.


왕자의 총애가 이녜스와 이녜스의 형제들에게 쏠린 것을 염려한 귀족들도 왕을 압박했고 결국 국왕은 며느리가 사망한 지 10년째 되던 해에 이녜스를 찾아 갔습니다. 왕이 왔다는 소식에 이녜스는 버선발로 마중 나갔지만, 그녀를 맞이한 것은 왕의 싸늘한 사형선고서 뿐이었습니다. 이녜스는 어린 자식들을 왕 앞에 내밀며 아이들을 봐서라도 용서해달라고 빌었지만, 왕에게 자비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녜스는 어린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목이 잘려 처형되었습니다.


페드루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이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에 길길이 날뛰며 슬퍼하였고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았습니다. 이녜스가 사망한 지 2년 뒤인 1357년, 페드루는 페드루 1세로 왕위에 즉위하였습니다. 그 후, 자신은 이미 이녜스와 결혼한 사이였다며 이녜스와의 자녀들 역시 모두 공주와 왕자로 책봉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귀족들의 반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죠. 전설에 따르면 그는 대관식에 이녜스의 시신도 데려왔다고 합니다. 시신에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온갖 장신구로 치장한 뒤 왕비의 자리에 앉히고 왕비의 관을 씌워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왕비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죠. 이녜스 살아생전에 그녀를 음해하고, 비방하여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던 왕궁의 사람들은 모두 이녜스 앞에 무릎을 꿇고 뼈만 남은 손등에 입을 맞추며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복수는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녜스가 사망한 지 6년이 흐른 뒤, 페드루는 오랜 추적 끝에 3명의 사형 집행인 중 2명을 찾아내어서는 몸소 심장을 뽑아내 처형하였습니다.

 

▲ 피에르 찰스 콩테, <1361년 이녜스 드 카스트로의 대관식>, 1849

페드루 1세는 이후 다시는 결혼하지 않았고 왕비의 자리는 이녜스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녜스와 페드루는 함께 안치되었으며 두 관은 심판의 날에 부활하면 서로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도록 마주 본형태로 놓여있습니다. 관에 새겨진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하리라는 문구처럼 죽음도 떼어놓을 수 없었던 영원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영화로 재창조되며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주은 작가
이주은 작가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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