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회 대학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지구는 순이를 구할 수 없다」(下)
제 41회 대학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지구는 순이를 구할 수 없다」(下)
  • 곽민정(문예창작·4)
  • 승인 2018.03.13 14:43
  • 호수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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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것이 다를 것이 없고 다 똑같은 생각을 할 텐데 그들은 내 앞에서 되게 유식한 척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서류를 입력해서 가져다주면 서류를 한번 더 꼼꼼하게 보지도 않고 특별히 믿으니까 시킨다며 여직원 한 명은 꼭 자리로 돌아가는 나에게 쓰레기통을 비워달라고 부탁했고, 나머지 남자 직원 셋은 나에게 커피 심부름과 담배 심부름을 동시에 시켰다. 조금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나 이만한 직장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군말 없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고, 그것이 지친다고 생각한 것이 5년째 일을 하던 때였다. 당시에 순이씨는 여전히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고, 순이씨가 일을 하는 곳 근처에 회사가 있었던 나는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순이씨를 만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다. 순이씨의 모습이 보이기라도 한다면 이들이 나를 더 무시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 생각을 나는 그때서야 하게 되었다.
 

내 나이 스물아홉,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들이 참 더럽다고 생각하기를 6년째, 회사를 그만두지도 그렇다고 계속 다니기도 참 허망한 때에 순이씨는 지하철 외판원 일을 그만두었다. 순이씨가 일을 그만둔 것은 단순히 그녀가 이 일에 대하여 흥미를 잃었기 때문. 순이씨는 일을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평소 순이씨와 친하게 지내던 시장 사람들 주변, 시장 골목의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순이씨는 손수 만든 수세미를 팔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펼쳐놓던 은빛 돗자리를 4분의 1 크키 정도로 펼쳐놓고, 방석 하나 깔아놓고 아무런 칸막이도 구비되지 않은 길거리에서 자신이 만들어놓은 수세미를 펼쳐놓고 또 끊임없이 반짝거리는 털실을 손으로 이리저리 조물거리며 또 다른 수세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세미를 만들면서 순이씨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다. 어울려 놀았다는 것이 맞는 상황이었다. 나는 순이씨가 계속해서 그런 일만 찾아서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더불어 직장에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쓰레기통을 비웠으며 제품하자 문제와 관련하여 걸려오는 전화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고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겹도록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꼭 이상한 쳇바퀴 속에 갇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순이씨는 그런 나를 보고 직장을 그만두지 말라고 했다. 지금처럼 돈을 꼬박꼬박 주는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라고. 니가 할 수 있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아간다고, 순이씨는 덧붙였다.
 

송은 나를 제외하고 우리 회사에서 유일한 미혼자이자 여직원이었다. 나와 같은 나이였지만 송은 원래 있었던 여직원이 임신 소식을 알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오게 되었다. 입을 삐쭉거리며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친 그 여직원은 어느 순간부터 사장님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기 시작했고, 그 사이 송은 나의 허드렛일로 다져진 업무를 검토하거나 완성하는 역할을 했다. 실질적으로는 나처럼 문서를 기입하고, 회사 자료를 이용하여 분석하거나 새로운 것을 기획하는 일을 했으나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는 송이 커피를 탔고, 사장님 대신 전화를 받았으며 이전에 임신한 여직원이 하던 일을 대부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송은 유일하게 나에게 쓰레기통을 비우게 하지 않았다. 청소부가 따로 없었던 작은 사무실에서 사장님은 각자 알아서 주변을 청소하라고 시켰으나 그 대부분은 내가 맡아서 했다. 그러나 송은 나에게 일을 맡기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스스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로서는 그것이 내가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졌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 내 역할이 없어졌다는 생각. 남자 직원들의 딴지에 조금 웃어주거나 정말 간단한 업무를 제외하고는 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그렇다면 백삼십만원을 받고 있는 내가 조금 하찮게 여겨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사장님이 나를 해고시킨다면 나는 정말 역할이 없으니 그에 불만을 토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나름의 두려움이 들었다. 송이 들어온 이후로, 나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생각보다는 직장에서 잘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지금 내가 이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나도 어쩌면 순이씨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내밀 수 있는 학력도, 재능도, 지식도, 기술도 없는 내가 순이씨와 다를 것이 없으면서 그동안 순이씨와 나를 무언가 다른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는, 그런 우스운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내 생각에 나는 저절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가 할게요!
 

송이 들어온 이후로, 나는 무엇이든 남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다. 임신한 여직원보다 사장님의 더 많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시간만 나면 송의 자리를 쳐다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쓰레기통을 비우려 하는 송에게서 쓰레기통을 빼앗았다. 아뇨, 이건 제가 잠깐 하면 되는 건데요. 이건 딱히 역할이 없는 거고, 사장님께서도 스스로 하라고 하셨는걸요. 송이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다른 분들 거는 제가 다 했어요. 다시 내가 말했고, 송은 쓰레기통을 쥔 손을 제 쪽으로 더 강하게 끌어당기며 괜찮다고 덧붙였다. 아니요, 제가 한다니까요? 내 목소리가 높아졌고, 나는 최대한 힘을 내어 쓰레기통을 다시 내 쪽으로 끌어왔다. 그러자 송은 쓰레기통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뺐고, 반사적으로 나는 쓰레기통과 함께 뒤로 고꾸라졌다. 그 바람에 쓰레기들이 우르르 내 배 위로 쏟아졌고, 그중에는 조금 남아 있던 커피가 흰 블라우스 위로 흘러 얼룩을 남겼다. 어머, 죄송해요. 그러니까 제가 한다니까요. 송은 내 위에 있던 쓰레기들을 다시 주워 빠르게 정리를 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앉아 멍하니 송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자 직원들은 나에게 갑자기 왜 나서서 일을 저지르냐고 핀잔을 주었고, 사장님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엄마, 나 일 그만둘까. 알아보니까 여기 서울에, 야간으로 전문대 정도는 갈 수 있겠던데. 그렇게 학교라도 좀 다닐까.

 

내 앞에서 수세미를 만들고 있던 순이씨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쏘아보는 것이었지만 정확히는 내 표정을 통해 나의 오랜 생각과 고민을 읽어내려는 나름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순이씨의 눈빛을 몇 초간 받아내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순이씨가 나를 책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안 할 거야? 순이씨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나는 사람도 없고, 나는 결혼 생각이 아직.. 그보다 나를 위해서 뭘 한 것도 크게 없는데. 나는 순이씨의 입에서 나온 결혼이라는 단어에 잠깐 내 나이를 헤아려보다가 임신한 여직원을 떠올렸고, 고개를 저었다. 송도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굳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그런 절차를 밟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순이씨에게 송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솔직히 지금이라도 조금만 공부를 더 하면 송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송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좋은 학교를 나와서 겨우 여기 밖에 못 오고 빌빌거리는 거 아니겠어? 나는 한번도, 그러니까 한번도 밖으로 내뱉은 적 없던 생각을 순이씨에게 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내가 해오던 일, 임신한 여직원, 남직원들의 담배 심부름, 그리고 송과 쓰레기통. 순이씨는 얼마간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나지막하게 욕을 뱉기도 했다. 나는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순이씨에게 되게 무심한 투로 이야기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순이씨 앞에서 이야기를 하자니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순이씨는 갓 만들어진 수세미를 바구니 속에 넣어놓고 다시 수세미를 짜기 시작했다. 순이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나는 순이씨와 보고 있던 텔레비전의 소리를 줄였고, 순이씨는 수세미를 반 정도 짜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리모콘에 손을 올렸을 때쯤 순이씨는 있잖아, 하며 말을 시작했다.
 

있잖아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중학교에서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이랑 살던 시장 골목까지 작은 언덕이 하나 있었어. 그게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는데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거든. 그런데 아무튼 나는 그 길을 그냥 걸어 다녔어. 걸어 다니는 게 좋았어. 걸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무튼 나는 걸어 다니는 쪽이었어. 그런데 그 언덕을 나는 커서도 다녔단 말이야. 내가 좋아서. 물론 가난했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표 값도 아끼고 그러면 부모님 짐도 덜고, 내가 좋아서 그랬단 말이야. 근데 나중에 커서 일을 다니게 되면서 그 언덕을 그렇게 다녔던 내가 너무 서글퍼지는 거야. 내가 이런 것에 감사하고 이런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라서 그 자체로 슬픈 것이구나. 내 부모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래서 서글픈 것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동정을 하는구나. 나는 내가 불쌍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그래서 내가 불쌍한 사람이구나, 그런 걸 느꼈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결국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니까. 이 굴레를 빠져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조금 후회해. 나는 공부 같은 건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네가 공부에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시킨 적이 없으니까, 그런 걸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해 준 적이 없으니까 네가 지금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해주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잘 찾아서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것이 마땅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지금에서야 들어.
 

나는 순이씨의 말을 듣다가 텔레비전을 껐고, 양말을 벗었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왔던 참이었고, 또 씻고 다음날의 출근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어쩐지 순이씨의 말을 듣자마자 내 자신이 더 초라해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있잖아, 너네 아버지 죽고 좋았던 거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뭐 였는 줄 알아? 되게 웃긴 말인데, 내 일이 생겼다는 거야.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게 너무 고되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살아가니까 솔직히 마음만큼은 너무 편했어. 결혼하고 다들 나한테 편하게 산다고 그랬거든. 일도 그만두고 집에서 편하게 살림한다고, 너무 좋은 사람 만나서 복에 겨워 산다고. 근데 나는 결혼할 때나 전이나 일로 받는 스트레스는 같았거든. 똑같은 노동력을 요구했고, 시댁에서 받는 인간관계도 다 똑같았어. 물론 너네 아버지 죽고 내가 가장이 되어서 이것저것 책임져야 하는 게 많으니까 그게 너무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편했어.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나 혼자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진짜 마음이 편했어. 그러니까 얘. ‘대부분’에 속해 있는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겠다고 판단이 선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목적이 생겼다면, 정말 네 목적을 이루는데 열과 성을 다 해. 아직 괜찮아. 사람 사는 거 별거 없어. 다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해. 너는 내가 지하철에서 물건 파는 거 싫어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조건 안에서 최대한으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게 바로 그거였어. 그래서 선택했고, 네가 말려도 내가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그 일을 했어. 그런데 뭐 크게 나쁘거나 좋은 거 없잖아. 네가 뭘 선택하더라도 다 똑같아. 그러니까 나한테 자신 없어 하지 말고 포기하지도 마. 얘야.
 

말을 마친 순이씨는 다시 수세미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나는 그런 순이씨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속에서 어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목구멍 속에 무언가 턱, 하고 걸린 것 같았고 근육이 경직되어 버린 것 같았는데,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풍선이 터지듯 톡하고 울음이 나왔다. 갑자기 소리 내어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나는 손목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계속해서 울었다. 순이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앉아 수세미를 만들었으나 그녀 역시 콧물을 훌쩍거리며 울었다.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는 밤이 지나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무함이 찾아왔다.

 

*

그것을 누린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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