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법 창구로 전락한 국민청원게시판
떼법 창구로 전락한 국민청원게시판
  • 전효재(환경자원경제·2)
  • 승인 2018.03.13 18:11
  • 호수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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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국민‘징징’게시판

청와대의 국민청원게시판은 장안의 화제다. 각종 언론에서도 민심의 척도로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 13만 건이 넘는 국민 청원이 등록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취임 100일을 기념해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국민청원 게시판은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으로, 숫자만 놓고 보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의 소통을 위해 만든 청원 게시판은 초법적인 요구를 하는 ‘떼법의 창구’가 돼버렸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점 이면에 다양한 부작용이 대두된 것이다. 물론 국민이 직접 사회적 문제의 공론화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지만, 사실상 청와대의 권한이 제한돼 있는 상태에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직접민주주의 실험을 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청와대가 나라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지 않으며, 청원은 엄연히 법적으로 지정돼 있는 근거가 분명한 법제도이다. 청원법 11조에 따르면 ‘모해의 금지’로 허위사실 적시나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1천만 원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청원에는 근거가 없거나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적인 청원이 대다수 등록돼 있고, 지지를 받고 있다.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 석방을 결정한 신광렬 판사,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정현식 판사 파면 청원이 특히 그렇다.

청와대는 현직 법관의 인사와 징계에 관련된 문제에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사법부의 비판은 삼권분립과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뿐이다. 청와대도 문제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은 지난달 21일 국회 운영위 업무보고에서 국민청원제도에 대해 “답변하기 부적절한 성격의 내용이 올라온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국민청원게시판은 다수의 힘을 이용해 전 국민의 생각을 표방하지만, 사실은 20만 명의 생각에 불과하다. 사실상 포털 ‘다음’의 ‘아고라’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의 김보름·박지우 선수 자격 박탈 청원이 하루 만에 37만 명을 달성했던 것처럼 순간적인 분노가 떼법 청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행태는 정치적 악용으로 여론 재판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고, 이를 참고한 국정운영은 중우정치를 조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어떤 의견이든 국민 의견 표출할 곳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청와대가 그동안 닫혀있던 문을 열어 국민과 소통하려 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명백하고 가시적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전효재(환경자원경제·2)
전효재(환경자원경제·2)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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