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를 다루는 우리의 자세
성범죄를 다루는 우리의 자세
  • 안서진 기자
  • 승인 2018.03.13 19:36
  • 호수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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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폭로가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은 좀처럼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여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으로 진실을 감추고 있던 호수의 침묵은 깨졌다. 미투 운동은 문화계, 예술계를 비롯해 사회 곳곳으로 퍼졌고, 지하 깊숙한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진실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본지 67면에서는 우리 대학으로도 번진 미투 운동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멀게만 느껴지던 뉴스 속 등장인물인 피해자 A씨가 내 주변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매일같이 언론에 보도되는 무거운 헤드라인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대학도 피해 가지 못한 이번 사건에 대해 학보사 기자로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기자는 미투 운동을 다룬 기사에 선뜻 앞장서서 나서지 못했다. 감춰져 있을 추악한 진실이 무서웠던 것도, 힘든 취재 과정을 예상해서도 아니었다. 기자가 쓰는 단어 하나, 글자 하나가 누군가에게 비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꺼려졌다. 기자란 원한을 먹고 사는 직업이며 세상에 환영받는 취재란 흔치 않다지만,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분노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불태운 곳은 방송사라 한다. 아마 기자와 같이 누군가의 비난이 두려워 언론의 역할을 망각하는 기자가 사회에 만연하다면, 그때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자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일부 언론인이다. 현재 몇몇 언론사들은 미투 운동을 자극적인 성(性) 콘텐츠로 이용하며 화제성 기사를 써내고 있다. 폭로에 담긴 충격적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그 이면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보도하려 하지 않는다. ‘단독보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클릭 수에 눈이 먼 나머지 진짜 중요한 본질을 흐리고 있는 꼴이다. 과연 우리나라 언론은 미투 운동을 제대로 보도할 준비가 돼 있는가.


피해자들은 기자와 언론인이 가장 두렵다며 입을 모아 말한다. 일부 기자에게는 ‘제2차 가해자’라는 호칭까지 붙어졌다.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대가다. 기자를 포함한 저널리스트들은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본인의 책임을 제대로 망각하고 있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성과 관련된 범죄에 대한 이 서투름 또한 선진화의 한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서 성숙해질 것이고, 훗날 또 다른 선진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한 취재원이 미투 운동을 바라보며 했던 말이다. 이번 사회적 운동이 단순히 단발성 이슈로 끝나지 않기를. 기자도, 그리고 언론도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서 한 단계 성숙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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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j960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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