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청원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
국민 청원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
  • 박정규(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8.03.14 01:29
  • 호수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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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벌어진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의 단체 추월 경기에서, 대다수 국민들의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광경이 빚어진 데 대해, 분노에 찬 상당수의 사람들이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는 사태가 벌어졌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이런 민원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이하여 청와대 홈페이지를 ‘국민 소통 플랫폼’으로 개편하면서 가능하게 된 것임도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상황이 이와 같다 보니 2018년 2월 23일을 기준으로 대략 124,500건을 넘는 글이 올라와 하루 평균 658건을 기록 중이라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이러한 청원 제도에서 별반 문제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가 공익적 성격을 띨 경우,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싶을 때가 있게 마련이므로, 이러한 의견을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 기관에 개진해 보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는데다가,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가 모일 경우는 정부 관계자의 공식 답변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견을 표출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의 실현에 일조를 할 수도 있음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국민 청원 제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제도에 나타난 허점 또한 있을 수밖에 없음도 당연한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허점을 한 가지 지적하자면, 누구의 답변이 되었든 답변 내용이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형식적인 답변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형식적인 답변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아무리 최고 행정 기관이라 하더라도 초법적인 기관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한때 초법적인 역할에 앞장 선 경우를, 박근혜 정부 시절의 푸드 트럭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겠는데, 주변 상권과의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함에도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에 집착하여 과도하게 밀어붙인 결과, 결국에는 상당수의 청년들이 시작과 동시에 사회의 높은 벽을 절감하면서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조짐이 현재의 국민 청원 제도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단순한 기우에 불과할까? 민원을 넣은 사람이라고 무조건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형식적 답변만이 계속 이어질 경우는 상대적으로 심리적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더 조장할 가능성을 있음을 반드시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3월 10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우롱하는 만화가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21만 6천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최대 추천 청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상황이다. 어떤 답변이 제시될지 사실 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나마 이 제도가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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