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
불법 체류자
  • 장승완 기자
  • 승인 2018.03.20 17:24
  • 호수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요시선 28. 불법 인생을 둘러싼 딜레마
▲ 출처:시사인

[View 1] 불법 체류자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의 고향. 부모님은 자식이라도 고향을 떠나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셨고, 결국 나를 머나먼 타지, 한국으로 보내셨다. 낯선 한국에서 나는 살아남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다 힘든 타지 생활 중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났고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됐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결혼은커녕 아이도 키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이는 떠나갔다.


고향을 떠난 지 어느덧 12년. 근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공장주는 불법 체류자라는 나의 약점을 이용해 경찰에 신고한다는 둥 매일같이 협박하며 월급도 제대로 안 주고 하루 종일 일만 시킨다. 걸음마 뗀 게 엊그제 같은 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초등학교에 보낼 나이가 됐지만 평범한 삶이 불법인 불법 체류자는 학교도 가지 못한다.


며칠 전에는 공장 관리자가 강제로 옷을 벗기며 성추행을 하려 했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 너무나 겁이 났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나는 옷이 찢어진 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까지 도망쳤다. 이런 삶을 계속 살아갈 수가 없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소중한 자식이 있다. 그렇기에 내일도 악착같이 살아갈 것이다.
 

▲ 출처:시사인

 [View 2] 공단 주민
도저히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요즘 들어 빈번하게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 때문이다. 어제는 골목에서 30년간 구멍가게를 하시던 할머니가 무참히 살해됐다. 평소 친분이 있던 분이라 충격은 더 크다. 용의자는 근처 공단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라는데, 찾기가 쉽지 않단다. 여권도 없는 불법 체류자라 CCTV와 외국인 노동자 모임을 중심으로 수사를 하는 데 난항을 겪는 모양이다. 도대체 정부는 왜 저렇게 위험한 불법 체류자의 단속을 소홀히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앞집에 웬 까만 피부를 가진 외국인 여자가 이사 왔다. 초등학생 또래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왔는데, 아무래도 수상하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저번에는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다 심하게 넘어졌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옷이 찢어진 채로 길거리를 뛰어다니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주변에 공단이 형성돼 있어 종종 거리에서 마주치는 외국인 노동자를 꺼렸는데, 이젠 집 근처까지 그런 수상한 사람을 이웃으로 맞이할 생각을 하니 매일 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내일은 앞집의 수상한 여자부터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다. 불법 체류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확인이라도 해야지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제발 불법 체류자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Report] 불법 체류자에 대한 논쟁
출입국 정보관리과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불법 체류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해 2016년 기준 20만8천971 명의 불법 체류자가 우리 곁에서 살아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법 체류자에 대해 편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제노 포비아’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도 우연은 아니다. 2016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내국인 범죄 가운데 살인이나 강간과 같은 강력 범죄 비율이 19.28%인데 비해 외국인 범죄 가운데 강력 범죄 비율은 30.67%에 달한다. 동거녀를 토막살인한 범죄부터 뺑소니, 위조지폐 범죄까지. 최근 몇 년간 외국인이 저지른 범행들은 제노 포비아를 야기 시켰다.


한편 불법 체류자의 실상에 대한 왜곡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2016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합법 체류자의 범죄율이 3%를 웃도는 반면 불법체류자의 범죄율은 1.78%로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언론에서 불법 체류자가 저지른 범죄만 지나치게 부풀려 대중에게 공포를 조장했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는다. 실제로 ‘시한폭탄’, ‘지저분한 너구리‘ 등 불법 체류자를 부정적인 단어로 낙인찍는 일이 미디어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어느 나라나 불법 체류자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갑론을박이 오가며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민 정서를 고려한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이다.
 

장승완 기자
장승완 기자 다른기사 보기

 babtista@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