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했다, 그걸로 된 걸까
변했다, 그걸로 된 걸까
  • 김민제 기자
  • 승인 2018.03.20 17:47
  • 호수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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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좋은 것인가. 기자는 이제껏 ‘너도 좀 변해보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실제로 변했는지는 뒤로 제쳐두고, 우리는 지금까지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서점에만 가도 발에 치이다 못해 걸려 넘어질 만큼 꽂혀있는 자기계발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변화하기를 요구한다. 나름 성공했다는 사람도 이토록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변화는 근사한 일이다. 적어도 어떻게든 변화하는 것이 머물러있는 것보다는 나은 것처럼 보인다.
 

세운상가도 변화했다. 십여 년간의 슬럼화를 극복하기 위해 건물 외벽은 말끔히 보수됐고, 상가 앞 광장은 정돈됐으며, 유용하고 신기해 보이는 공간도 생겨났다. 창작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팹랩 서울’은 생전 처음 보는 기계만큼이나 신선하게 다가왔고, 사회적 기업의 자립을 돕는 몇몇 기업의 새로운 움직임은 기대 이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곳에는 변화의 흔적, 정확히 말하면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이러한 세운상가의 야심 찬 시도를 완전한 변화라 칭하지 못하고 노력의 일부로 한정 지어버리는 것은 하루를 온전히 이곳에서 보내고 느꼈던 약간의 아쉬움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아쉬움은 높게 쌓인 박스와 갖가지 짐으로 어수선해 보였던 통로 때문이었을까,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끝내 방문하지 못한 곳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취재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털어놓았던 현실적인 이야기의 무게에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진 탓일까.
 

장사가 안된다는 말을 꺼내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 사람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기자도 같이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바뀐 건 간판밖에 없는데 임대료만 올랐다는 한숨 섞인 이야기로 무거워진 공기를 애써 외면하려 서둘러 다음 질문을 건넨다. 물건을 사려고 상가를 둘러봐도 다른 곳보다 나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방문객의 말에 괜스레 쌉싸름한 기분이 몰려온다.
 

변화는 좋은 것인가. 마지막 취재를 마치고 어두워질 무렵 상가를 나오며 다시 한번 자문해보지만, 선뜻 ‘그렇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항상 ‘바뀐다’는 것이 ‘좋아진다’로 귀결되진 않는다. 특히나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도태되는 이들이 생긴다면 더더욱 변화의 의미는 퇴색된다.
 

그날 본 세운상가는 확실히 변해있었지만, 진정으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지만, 사람을 위한 변화는 잘 보이지 않았다.
 

90년대, 공교롭게도 세운상가가 한창 기울어가던 무렵에 한 난장이가 쏘아 올렸다던 작은 공은 지금, 어디로 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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