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 외치, 베실리우스에게 감명받다
해부학 : 외치, 베실리우스에게 감명받다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03.21 00:18
  • 호수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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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메디컬 히스토리

“여긴 또 어디야?” 눈 부신 햇살 때문에 외치는 자신이 또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다. 건물이나 사람들의 차림새로 보아 이전보다 훨씬 문명이 발달한 느낌이었다. 손등에 쓰여 있는 숫자를 보니 1551년이다. “죽을 때마다 몇백 년 뒤로 가는군. 응? 저건 또 뭐지?” 멋진 옷을 입은 남자들이 한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외치는 행렬에 섞여 건물로 들어갔다. 외치가 뒤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거요?”
 

남자는 외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입을 열었다.
 

▲ 베살리우스의 초상화

“당신 같은 사람이 올 곳은 아닌데... 베살리우스 (Andreas Vesalius)가 여기서 해부학 강의를 해요.”
 

남자의 설명을 들은 외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동물도 아니고 사람의 사체를 해부한다니. 그것도 사람들이 우글대는 곳에서? 이걸 왜 하느냐고 묻자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것 보게. 사람을 고치려면 뭐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네. 간이 왼쪽에 가 있다면 오른쪽으로 돌려놓아야 하지 않은가? 근데 이를 위해서는 각 기관이 원래 위치를 알아야 하겠지? 사람은 말이야, 내부 구조가 다 비슷하다네. 그러니 여러 사람을 해부해보면 명의가 될 수 있지.”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계속 쑤시는 자신의 무릎도 제대로 된 해부학만 안다면 고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잡담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누군가가 나지막이 외쳤다. “오오, 드디어 오신다!”
 

“여러분, 해부학을 알아야 합니다! 저 혼자 잘되자고 이러는 게 아닌 거, 여러분도 다 아시지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한 베살리우스는 테이블에 놓인 시체를 가르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심장입니다.” “여기는 신장이고요.” 베살리우스가 한마디 할 때마다 다들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외치 역시 감탄해 마지않았다. ‘해부학 강의가 이렇게 이루어지는 걸 보니, 의학이 발전해 내 통증을 없애줄 날도 멀지 않았구나.’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저 시체들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거지?’
 

강의를 열심히 들어서인지 외치는 매우 피곤했다. 눈앞에 보이는 잔디밭에서 쉬었다 가려 했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깜깜해질 무렵, 남자 둘이 그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이걸로 하지!” 남자1은 날렵한 동작으로 외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윽...캑캑.” 외치가 발버둥을 쳤지만, 그 옆에 있던 남자2가 외치의 명치를 주먹으로 쳤다. “아, 이렇게 또 죽는구나.” 외치가 죽자 남자 둘은 하이파이브를 한 뒤, 외치를 들고 어디론가 갔다. 건물 앞에 다다른 남자는 문을 두드렸다. “녹스 씨! 접니다, 윌리엄 버크.”*

 

*당시에는 해부학 강의가 인기가 있어서 시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윌리엄 버크는 시신을 팔아넘기기 위해 총 17명을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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