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보다 중요한 것,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작품성보다 중요한 것,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김혜우(국어국문·2)
  • 승인 2018.03.27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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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줬다.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고은, 이윤택 등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퍼졌다. 이는 전 국민을 경악에 빠지게 한 일이지만 일각에서는 ‘터질 게 터졌구나’ 하는 반응도 존재했다.


곧 ‘미투 운동’에서 언급된 가해자들의 작품을 두고 교과서에 실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들은 보통 ‘미투 가해자’라고 불리지만, 더 확실하게는 ‘성범죄자’일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모든 교육에서 공통으로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인 삶’이다. 그런 교육의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범죄자’의 작품을 굳이 해석까지 해가며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이미 ‘도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의 작품을 삭제한다면, 친일 문학인들의 작품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제기됐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은 성범죄자 고발이지만, 이는 결국 과거 친일 문학인들의 작품 삭제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친일 문학인의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이광수, 서정주와 같은 문학인들은 친일 행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직도 교과서에 자리하고 있다.

‘작품성’이라는 말은 편리하다. 작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비판을 덮어버리는 편리한 도구이다. 비판해 마땅하지만 ‘작품성’ 때문에 교과서에서 삭제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작품 하나, 작가 하나 사라진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설령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아 전체를 들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해도 세상은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만약 세상이 바뀐다면, 그 바뀐 방향은 옳은 방향일 것이다.

교과서에서 이들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후대의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비단 그 아이들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껏 수많은 친일 문학인의 작품을 배워온 우리는 어떠한가?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능력’이 있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온다면 누군가는 ‘그래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심어주면서까지 교과서에서 범죄자를 삭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교육 체계가 범죄자의 작품, 범죄자의 힘 없이는 교육할 수 없다면 그 교육은 사라지는 것이 낫다. 썩은 권력의 산물로써 연명하는 교육이라면 하지 않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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