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에 성공한 왕비 ④ 영국 헨리 8세 下
탈출에 성공한 왕비 ④ 영국 헨리 8세 下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3.27 17:20
  • 호수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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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 한스 홀바인, <앤클리브의 초상화>, 19세기 경

이전 두 편에서 우리는 헨리 8세의 세 아내를 만나보았습니다. 스페인의 공주였던 캐서린과 영국의 귀족이었던 앤 불린, 제인 세이모어가 모두 세상을 떠났죠. 이제 솔로가 된 헨리 8세에겐 새로운 아내가 필요했습니다. 헨리 8세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정략결혼을 권유하자, 군주로서 하는 수 없이 이에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예쁜 얼굴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왕은 궁중 화가, 한스 홀바인을 보내 후보들의 얼굴을 아주 정확히 그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언제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헨리 8세는 자신이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잘생긴 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제 유럽 전역에서는 그의 미모(?)보다는 악명이 유명했습니다. 한 귀부인은 영국에서 결혼 이야기를 하러 오자 아쉽게도 자신은 목이 하나밖에 없어 헨리 8세하고는 결혼할 수 없다는 답을 하기도 했을 정도였죠.


그런 와중, 왕비 찾기에 긍정적으로 답한 곳은 클리브스 공국으로 영국처럼 신교를 믿는 지역이었습니다. 초상화를 보고 매우 흡족해한 헨리 8세는 곧 청혼했고,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 앤은 나이 많은 왕과 결혼하러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영국으로 왔습니다. 헨리는 작은 공국에서 온 아무것도 모르는 가냘픈 아가씨를 생각하며 들떠 있었지만 앤을 보자 곧바로 심통이 나버렸습니다. 앤을 보고 돌아서자마자 “나 저 여자 싫어! (I like her not!)”라고 외쳐버렸죠. 물론 흔한 루머처럼 앤이 초상화와 너무 다르게 생긴 추녀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앤이 뼈대가 커서 웅장한 궁과는 아주 잘 어울렸지만, 헨리 8세가 좋아한 여린 종달새 같은 여성 취향과는 영 맞지 않았던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앤이 마음에 들지 않은 왕은 유치하게도 그 먼 길을 온 약혼녀를 매몰차게 대했고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왕이 싫다는데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니, 결국 클리브스의 앤과의 결혼은 혼인 무효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전 두 명의 아내와 자기 마음대로 결혼을 끝내버린 경력이 있던 왕은 뒤로는 앤을 없앨 증거들을 미리 만들고 있으면서도 앞에서는 앤에게 혼인 무효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헨리 8세에겐 아주 놀랍게도 앤은 왕의 제안에 깔끔하게 좋다고 대답했고 왕은 기분이 좋아져 앤과 혼인 무효를 곧장 선언한 뒤, 앤에게 여러 성과 저택 및 연금과 더불어 ‘왕의 사랑하는 여동생’이라는 칭호까지 내려주었습니다.


앤의 오빠인 클리브스 공작은 동생이 시집가자마자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펄펄 뛰며 가문의 망신이라고 앤에게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 했지만, 앤 입장에서는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살면 왕한테 ‘여동생’으로서 늘 환영도 받고 매년 꼬박꼬박 돈도 나오고 성과 저택도 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팔려가듯 결혼하러 가야 할 테니까요.|
 

▲ 한스 홀바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초상화 >, 1523년

헨리 8세는 앤이 아내로 싫었던 것이지 친구로도 싫었던 것은 아니라서, 이후 앤을 궁으로 불러 정치를 포함한 여러 주제로 담소를 나누길 좋아했다고 하며 두 사람은 친구로 잘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클리브스의 앤은 평생 영국에서 살면서 헨리 8세의 모든 아내보다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헨리 8세보다도 오래 살아 에드워드와 메리가 왕위에 오르는 것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결국, 헨리 8세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왕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군요!


그렇게 네 번째 아내가 순식간에 쫓겨나 버렸네요. 이제 오십이 다 된 왕의 눈은 15살밖에 안 된 귀여운 귀족 소녀에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왕비가 된 ’가시 없는 장미‘는 다음 편에서 만나보아요.

이주은 작가
이주은 작가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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