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밥차’의 하루 - ‘봉사가 취미’… 베푸는 가치를 알아가는 삶
‘사랑의 밥차’의 하루 - ‘봉사가 취미’… 베푸는 가치를 알아가는 삶
  • 안서진·임수민 기자
  • 승인 2018.03.27 17:45
  • 호수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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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보건복지부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매년 약 37만 명의 취약계층이 정부로부터 기초생활비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현재 추정되는 결식아동과 생계가 어려워 제때 끼니를 챙겨 먹기조차 힘든 독거노인만 약 61만 명 이상으로, 그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옛 속담이 있다. 기쁨을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다소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의문을 명쾌하게 이해시켜주는 단체가 있다. 바로 따뜻한 밥 한 끼로 사랑을 나누는 봉사 단체 ‘사랑의 밥차’이다. 사랑의 밥차는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정신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 공동체 건설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봉사’라는 일념 아래 대형 트럭을 끌고 다니며 요리를 만들어 봉사하는 단체이다. 1998년에 시작해 어느덧 21년째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노숙자와 독거노인 등 우리 주변에 소외된 이웃이 있다면 장소에 구애 없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간다.


서울, 경기, 충남 등 총 5개의 지부를 설치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사랑의 밥차’팀이 찾은 오늘의 목적지는 의정부시에 위치한 종합사회복지관. 봉사 정신을 넘어서 사랑을 전하고 있는 그들의 하루를 지난달 6일 동행 취재했다.
 

오전 9시. 극한의 추위, 그래도 준비 시작
영하 14도의 극강 한파가 몰아치는 이른 아침. 의정부시 종합사회복지회관 앞에 커다란 트럭 한 대가 멈춰 선다. 이윽고 트럭 문이 활짝 열리더니 고동색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이 차에서 내린다. 추위에 맞서기 위해 장갑과 목도리로 온몸을 꽁꽁 싸매봤지만, 매서운 칼바람을 막기에는 역시나 역부족인 모양이다. 잔뜩 웅크린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추위를 다시금 실감하지만, 그들은 이내 능숙하게 가스 불을 켜고, 커다란 은색 통에 물을 가득 담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메뉴는 떡국이다. 떡국에 들어갈 떡을 불리기 위해 물을 길어 와야 하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수도관이 얼어버려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물을 길을 수 있었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올해로 5년 차라는 봉사자 한형주(56) 씨는 “오늘보다 날씨가 더 추웠던 지난해 겨울, 길거리 한복판에서 김장했던 그 날에 비하면 나름 견딜만하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른 아침 작은 소동을 일으켰던 수도관 동파 사건이 일단락되고, 하나둘 봉사자들이 더 도착해 반가운 인사와 함께 곧바로 역할을 분배한다. 누구는 떡국의 육수를 우리고, 또 누구는 떡국에 들어갈 고명을 열심히 준비하기 시작하며 정답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사랑의 밥차 이사장 채성태(50) 씨는 “자원봉사자들 모두 자신의 본업을 병행하며 시간을 쪼개 참여해주고 있다”며 “그들이 있기에 밥차 봉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달에 네 번, 1년에 약 50회 정도 진행되는 봉사 덕분에 봉사자들은 서로에게 제2의 가족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
 

오전 11시. 봉사가 취미라는 그들
배식 시간이 다가오자 식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들의 손이 더욱더 분주해진다. 오늘의 목표량은 200인분. 수북이 쌓인 재료와 거대한 조리도구에 놀라는 기자를 보고, 양현선(31) 씨는 “많을 때는 700~800인분 이상도 해본 적이 있다. 오늘 준비하는 떡국 200인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태연하게 말한다. 이어 “다른 봉사 단체처럼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때그때 살림에 맞춰 최선의 요리를 제공해 드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는 양 씨의 말에서 깊은 진심이 전해진다.


서로 정다운 말을 주고받으며 음식을 손질하는 봉사자들 사이로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사람이 보인다. 바로 오늘 처음 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된 최연미(52) 씨다. “첫날이라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수줍은 듯 말하며 묵묵히 배당받은 재료를 손질하던 최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참여해 계속 봉사를 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자신의 본업을 마치고 도착한 마지막 봉사자까지 포함해 오늘은 총 20명의 봉사자가 나왔다. 봉사자들 대부분은 따로 본업을 가지고 있어 일정에 따라 매번 참여하는 인원수가 다르다. “봉사가 좋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여기 들어와 보니까 다들 봉사를 무슨 취미 활동처럼 한다니까요?”라고 말하는 한 씨의 말에 다들 웃음을 보인다.

 

오후 12시. 깔끔하게 비워진 그릇들
정신없이 요리를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시곗바늘은 오후 12시를 가리킨다. 약속된 시간은 12시지만 일찍부터 찾아오신 어르신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어서 떡국이 준비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텅텅 비어있던 자리는 추위를 뚫고 복지관으로 들어오는 어르신들로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한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 특보가 내려져 차갑다 못해 살을 에듯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복지관은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두 통과 각종 밑반찬을 재빨리 세팅하는 봉사자들의 손끝에서는 서두름과 긴박함이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어르신들께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해드리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밥 준비 다 됐어요”라는 소리와 함께 배식은 시작된다.


아침부터 꼬박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성스레 준비한 떡국이다. 하얀 떡, 다양한 고명 그리고 봉사자들의 마음만큼 고기가 듬뿍 들어간 떡국은 단연 인기 만점이다. 오늘은 특별히 경기북부경찰청과 함께 하는 봉사이기에 평소보다 빠른 배식이 이뤄진다. 한 분 한 분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며 떡국을 아낌없이 퍼주는 봉사자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오후 1시. 그들이 봉사를 이어가는 이유
배식을 시작한 지 1시간이 넘어가자, 대부분의 식사는 끝이 난다. 그렇게 많아 보이던 떡국 200인분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일찍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잘 먹었다며 기분 좋게 복지관을 나가신다. 가득 담아드린 떡국 한 그릇을 대부분 남김없이 드셨다. 할머니 한 분은 “너무 맛있어서 국물까지 다 먹었다”고 말하며, 자랑스레 빈 그릇을 들어 보인다.


그 누구의 강요도 없이, 그저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는 ‘사랑의 밥차’. 마지막 한 분까지 식사를 끝내는 것을 본 뒤에야 봉사자들의 긴장이 풀린다. 맛있게 드셔주는 어르신들 덕분에 뿌듯함을 배로 느낀다는 그들은 뒷정리를 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Epilogue
32시간. 우리 대학을 졸업하기 위한 필수 요건인 사회봉사 시간이다. 하지만 단순히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봉사 활동 장소를 찾은 대부분 대학생에게 봉사의 참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최근에는 봉사 활동이 시간당 돈으로 거래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봉사’의 의미가 얼마나 퇴색됐는지를 보여준다.


취재가 마무리될 무렵, 다소 지쳐 보이는 한 봉사자에게 기자는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관해 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기부를 비롯해 꾸준히 봉사 활동을 이어온 데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이라고 기자는 확신했다. 하지만 밝은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연 봉사자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그냥’이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한 기자가 되물었지만, 잠시 생각해보던 봉사자는 결국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냥’이라는 두 글자는 짧았지만, 기자에게 주는 울림은 깊었다. 하루 동안 지켜본 그 봉사자의 행동을 통해서 ‘그냥’이라는 답변 뒤에 숨겨진 의미를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에게 봉사는 어느새 생활이 됐고, 삶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닐까. 학업, 스펙 쌓기, 취업 준비로 지쳐 가는 대학생들이 태반인 요즘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당신도 누군가에게 ‘그냥’이라는 말과 함께 봉사로 따뜻한 위로를 주는,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오히려 위로를 주러 갔던 본인이 예상치 못한 진한 위로를 얻게 되는 일이 펼쳐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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