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체득하는 것이다 :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지식은 체득하는 것이다 :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 미래인문학 연구소 권영민 소장
  • 승인 2018.04.03 12:07
  • 호수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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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 미래 인문학 5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이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수업 시간이 아니라 휴식 시간에 배우는 것들이 아이들이 나이 들었을 때 더 쓸모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던진 도발적인 메시지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지식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고대 수렵사회에서 사냥을 위한 정보와 지식이 필요했으며,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위한 자연과 환경의 변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산업혁명 이후 지식은 전문가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준점으로 전환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4차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교한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판단을 하는 건 인간의 몫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넘어갔습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지식은 더 이상 인간의 몫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식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 오늘 날 애플이 혁신의 아이콘이 된 배경에는 새로운 디자인도 아니며, 편리한 기능을 추가한 것도 아닙니다. ‘뉴욕타임스’는 2014년 8월 ‘애플 대학’의 커리큘럼과 운영방식 등을 소개할 때, 피카소의 1945년 작품인 <황소 연작>을 소개했습니다. 피카소가 <황소 연작>을 그릴 때 1개월 동안 꾸준히 관찰하고 작업하면서 최종적으로 10개 남짓 단순한 선만으로 표현한 <황소>를 그려냈습니다. 애플 대학 넬슨 교수는 애플 제품이 뛰어난 디자인과 성공의 비결이 ‘피카소 방식’에 있는데,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 피카소, <황소 연작>, 1945~1946

 

저는 제가 하는 일의 경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느리면 헐렁해서 꼭 끼이지 못하고 빨리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는 것은 손에 익숙하여 마음에 응하는 것이라, 입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이에는 익숙한 기술이 있는 것이나 저는 그것을 제 자식에게 가르칠 수가 없고 제 자식도 그것을 저에게서 배워갈 수가 없어서 이렇게 제 나이 칠십이 되도록 늙게까지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날의 성인도 마찬가지로 깨달은 바를 전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읽으시는 것도 옛 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장자-천도』

 

위의 인용은 제나라의 왕인 환공과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인 윤편과의 대화입니다. 제나라 왕 환공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이를 본 윤편이 왕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왕의 대답이 이어지는데 윤편은 당돌하게도 “왕께서 읽으시는 것은 옛 사람의 찌꺼기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화가 난 왕은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면 죽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윤편은 자신이 수레바퀴를 만들면서 체험한 이야기를 왕에게 설명합니다. 아들에게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려고 하는데, 수레바퀴를 만드는 기술을 입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글로도 책으로도 이해시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책은 선인의 완전한 지식을 담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장자’는 윤편의 입을 빌어 진정한 지식은 머리로 하는 인식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체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학습(學習)’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논어의 첫 구절이기도 한 이 단어는 ‘배우고 익히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학(學)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하고, 습(習)은 단순히 지식의 반복적인 학습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학습입니다. 공자가 말한 ‘학습’도 끊임없이 익혀서 내 몸이 체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사회는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은 단 한순간도 멈춰 서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합니다. “20년 배워 평생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굳어있는 지식을 더 쌓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디지털 패러다임에 적합한 지식을 이해하고 체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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