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왕과 가시 없는 장미 ⑤ 영국 헨리 8세 下
늙은 왕과 가시 없는 장미 ⑤ 영국 헨리 8세 下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04.03 13:32
  • 호수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드디어 헨리 8세의 이야기 마지막 편입니다. 벌써 헨리 8세의 왕비를 네 명이나 만나보았네요. 젊었을 때는 유럽에서 가장 잘생긴 왕자 소리를 들으며 인기가 많았던 헨리 8세도 노년에 접어들면서 이제 모두가 두려워하는 폭군이 되어있었습니다. 예전에 다쳤던 다리의 상처에서 나오는 고름 탓에 악취가 지독하게 풍겼고 부상 때문에 운동을 못 하면서 살이 심하게 쪄 허리는 52인치(140cm)로 늘어났죠.
 

▲ 코르넬리스 마시스, <헨리 Ⅷ세>, 1548


독일에서 바다 건너왔던 넷째 아내, 클리브스의 앤과 혼인 무효를 선언한 왕은 이번에는 캐서린 하워드라는 15~17살짜리 소녀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있었습니다. 캐서린 하워드의 집안은 불린 가문과 사돈지간으로, 캐서린을 향하는 헨리 8세의 관심을 이용해 다시 한번 권력의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고자 눈을 빛내고 있었습니다. 헨리 8세는 상큼하고 사랑스러운 이 어린 소녀에게 홀딱 반했고, 결국 캐서린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미 비밀리에 결혼했는데도) 집안의 압박과 왕의 욕심 앞에 어쩔 수 없이 30살도 넘게 차이 나는 왕과 결혼하였습니다.



헨리 8세는 캐서린에게 가시 없는 장미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애지중지했지만, 왕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십 대 소녀의 눈은 또래 남자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철부지였던 캐서린은 왕의 눈을 피해 몰래 다른 남자들과 밀회를 즐기는가 하면, 자기의 옛 연인을 궁으로 끌어들여 한 자리 만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궁에는 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는 법,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왕비가 바람을 피운다는 수군거림은 온 궁정을 돌아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순수한 천사와 결혼했다고 믿었던 헨리 8세는 어린 아내의 부정에 분노가 폭발했고, 결국 캐서린의 연인들과 연애편지를 전달했던 제인 불린(자기 남편 조지 불린과 그의 누이 앤 불린이 근친을 했다고 증언했던 인물)과 캐서린 하워드는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처형되기 전날, 캐서린은 처형에 사용될 나무 받침을 감옥으로 가져다 달라고 청하고는 밤새도록 받침에 머리를 대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결혼한 지 고작 1년 4개 월만의 일이었습니다.



순식간에 5번째 아내의 목이 달아났으니 이제 여섯 번째 아내를 만나봐야겠군요. 휴! 왕이 새롭게 고른 상대는 캐서린 파라는 부유한 과부였습니다. 그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지만, 왕이 결혼하자는데 별수 있나요. 새로운 왕비는 전 부인들이 낳은 세 아이를 챙겼고, 헨리 8세가 자신이 쫓아냈던 두 딸(메리, 엘리자베스)과 화해하도록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자신의 두 딸도 아들 에드워드의 뒤를 이어 왕위계승 2순위와 3순위로 들어가도록 법을 만든 헨리 8세는 이번에는 자신이 아내보다 먼저 말 많고 탈도 많았던 인생을 끝마쳤습니다. 그의 나이 55살의 일이었죠.
 

▲ 윌리엄 스콧, <캐서린 파>, 1545


그 후, 캐서린 파는 왕이 죽은 지 반년 만에 원래 연인이었던 토마스 세이모어와 비밀리에 결혼하였습니다 (토마스 세이모어는 셋째 왕비였던 제인의 형제로, 헨리 8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6세의 외삼촌입니다). 헨리 8세가 세 번이나 결혼한 뒤에야 얻은 아들, 에드워드는 왕위에 올랐지만 곧 사망했고, 그 뒤를 이어 큰 누나 메리가 영국 최초의 여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일을 잊지 못했던 메리 1세는 영국을 가톨릭으로 되돌리려 수많은 신교도의 처형도 불사하다 블러디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메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다음 순서로 왕위에 오른 것은 영국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단 칭송을 받는 엘리자베스 1세, 앤 불린의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언젠가 들려드릴 또 다른 이야기네요.
 

이주은 작가
이주은 작가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