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법의 이면(異面)
클레어법의 이면(異面)
  • 전효재(환경자원경제·2)
  • 승인 2018.04.03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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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찍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클레어법은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이 연인의 폭력 전과정보를 요구할 때, 혹은 경찰이 사전에 폭력 등의 위험성을 인지할 경우 특별한 요청이 없어도 검토 후 정보를 제공해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최근 부산 데이트 폭력 사건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한국에도 클레어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번 이슈 이전에도 일각에서 꾸준히 나왔던 주장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가 꾸준히 주장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성이 안전한 나라’를 위해 데이트폭력·스토킹 폭력·디지털 성범죄 대응 정책을 발표했었고, 그중에는 한국식 클레어법인 ‘가정폭력 전과공개제도’의 도입도 포함돼 있었다.


클레어법은 ‘잠재적 피해자’가 파트너의 ‘잠재적 폭력성’을 간파하면 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전과 정보를 알아내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생각은 개인이 조심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로, 범죄 발생의 책임을 도리어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데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맹점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잘못을 씻고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단순히 폭력 전과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과가 공개돼 연애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들은 영원히 범죄자로 취급돼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클레어법의 신상공개 방식은 기존의 전자 발찌나 화학적 거세처럼 범죄의 원인과 책임을 그저 개인에게 돌려 낙인을 찍어버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범죄자들을 낙인찍고 사회에서 배제하는 방식은 예방보다는 그들의 분노와 좌절을 더 키워 범죄를 지속해서 저지르기 쉽게 만들 뿐이다.


사실 한국도 이미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해 ‘데이트 폭력 근절 특별팀’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가정폭력범죄 특례법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규정이 없어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경찰이 여성의 안전 조처 요구를 방치해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성들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연인 간의 갈등은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경찰의 권한 밖의 규정과 안일한 태도에 또 다른 피해를 보고 만다.


따라서 데이트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지금의 경찰 규정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것이 첫 번째 걸음이다. 클레어법으로 범죄 전력자의 감시를 강화하는 것은 적어도 지금은 효과적인 예방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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